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2·28이라는 연못
천내중학교 2학년 오소연
지금으로부터 2년전,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2·28민주화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에 관하여 모둠별로 나누어 조사를 해라.” 나는 그나마 이 사건들 중에서는 4.19혁명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4.19혁명을 조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모둠원들도 나와 같은 4.19혁명을 조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가위바위보를 했고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어쩔 수 없이 2·2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조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쳐보고 나와있는데로 보고서에 생각 없이 적었다. 막상 적고 발표를 하기 위해서 발표 연습을 하다 보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이해하려고 더 많은 자료들을 조사해보았다.
우선 그 당시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로 인해서 국민들은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대통령•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박사의 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나라에서 대구의 8개 공립고등학교인 경북고, 경북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대구여고, 대구상고에 영화관람이나 게임, 임시시험, 토끼사냥을 핑계로 일요일에 등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토요일에 학교를 가는 것도 끔찍한데 어른들의 정치싸움 때문에 일요일에도 학교를 가야하는 학생들이 짜증날 것 같았고,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가만히 있기만 하는 어른들도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보통 고등학생들이 아니었다. 1960년 2월 27일 밤에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인 이대우의 집에서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등 약 3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그들은 은밀한 대화속에서 다음날인 2월 28일에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어른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한낱 학생들이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같이 ‘연못을 휘저으면 연못 속의 부유물에 의해서 물이 탁해지는데 이걸 휘저어서 연못물을 탁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학생들도 괜히 시위를 벌였다가 거리가 난장판이 되고 학생들이 잡혀가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2월 28일 낮 12시 55분, 이대우 등 여러학생들이 조회단에 올라 지난밤 작성한 결의문을 읽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이 목숨이 다 할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이러한 행위는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이 결의문을 읽는 소리는 곧 학생들의 함성과 박수로 이어졌고 이것들은 곧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대는 점점 더 커졌고 그들의 정의로운 목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에 의해 약 1200명의 시위 참가자들 중 120명 정도가 붙잡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예상대로 학생들이 잡혀가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시민들의 시선이 이 사건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매서운 눈초리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대부분의 학생들을 석방해야 했고,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28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3.15마산의거가 있었고, 이로 인해 4.19혁명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4.19혁명이 일어나고 일주일 뒤인 1960년 4월 26일,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것은 모두 2·28민주화운동이라는 모든 시위의 시발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부패를 막기 위해 어른들이 아닌 학생들이 시작했던 시위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본의 시작으로 다져지게 된 것이다. 내가 앞서 걱정했던 것처럼 연못물은 가만히 둔다고 영원히 깨끗하게 유지되는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가만히 둔다면 당장은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바닥에 쌓인 부유물로 인해 연못물 전체가 썩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도 그대로 두었으면 겉으로는 깨끗해보였을지도 몰랐겠지만 그대로 계속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면 부정부패로 인해 결국에는 나라가 썩어갔을 것이다. 대구의 학생들은 나라가 연못같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연못의 부유물을 걸러내는 것처럼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로 나라를 뒤흔드는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결과만 봐도 뻔하지 않은가? 당장 청소할 때는 더러워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에 우리나라는 독재정치와 부정부패라는 부유물을 걸러내고 이전보다 더 깨끗한 민주주의라는 연못이 되었다. 나는 어른들이 내지 못한 용기를 내서 시위한 우리 대구의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느꼈고 무엇보다 나와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은데 시위를 하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꾼 학생들을 보니 우리같은 학생들의 작은 소리 한 마디에도 나라를 뒤흔드는 힘이 생길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며 나도 그들처럼 바르고 정의로운 소리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비록 학교 과제라는 명분으로 시작해서 알게된 사건이지만 그냥 조사해본 사건 그 이상을 넘어서서 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대구라는 도시에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 지금도 잊지 못하는 혁명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