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죄책감과 자부심
왕선중학교 3학년 박예담
갑작스러운 일요 등교가 있던 날, 그 날은 선거 유세가 있는 날이었다. 선거 유세 때문에 일요일에 등교를 시켰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준다면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반 구석에 모여 어떻게 할지 얘기를 나눴다.
우리 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학교 전체가 그랬었다. 학생들 사이에 반마다 한 명씩 다른 반들을 돌아다니면서 각 반의 의견을 전했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했던 얘기와 그날의 차가웠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야, 1학년 대표 왔어.”
“선배, 저희는 다 같이 나가서 시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 다른 학교 소식은 들었어?”
“네. 옆 학교가 먼저 시위하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학교들 사이를 몰래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하는 애들도 있어서 소식을 금방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도 시위하자.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한꺼번에 나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어.
3학년이 제일 먼저 나가고 2학년, 1학년 순으로 나가는 걸로 하자.”
“네, 선배. 2학년 선배들이랑, 1학년 애들한테도 다 전할게요.”
“그러면… 일단은 문구부터 쓰자.”
“만드는 거 잘 하는 애들 모아서 만들라고 시켜 놓을게요. 다녀오겠습니다.”
선생님들이 회의가 있었다. 다른 학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회의를 하는 사이에 우리끼리 나갔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몰래 나왔다. 우리 학교가 먼저 구호를 외치면 다른 학교 애들이 나오기로 약속했었다.
“독재 타도! 이승만 정권은 물러나라!”
내가 먼저 외쳤고 곧 우리 학교 애들이 모두 같이 외쳤다. 우리 소리를 듣고 다른 학교 애들이 나왔다. 우리는 목청을 높여 더 크게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나는 놀랐다.
우리보다 어린 애들이 밖으로 나와 시위를 같이 했다. 고등학생도 힘든 일을 중학생, 초등학생 애들이 나와서 같이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졌다. 우리 소리가 커져서인지, 누군가가 우릴 보고 경찰서에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찰들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냥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경찰들은 우리를 밀쳐 넘어뜨려 발로 짓밟고 방망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가라면 얌전히 학교에 있어야지. 왜 나와서 시위나 하는 거야?”
“아저씨들도 알잖아요! 이승만 정권의 독재로 우리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경찰들은 단지 일을 할 뿐이었다. 다만, 그 일이 잘못된 일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아, 아파요! 아파요! 살려주세요!”
“어린 놈의 새끼가 학교에 가서 얌전히 있으면 되지 뭐하러 나와서 이래?”
경찰이 어린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 나는 이성을 잃고 그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집에 있는 어린 남동생 생각이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경찰을 밀치고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이거 놔요! 꼬마야! 괜찮니?”
경찰은 일어나서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항했지만 아무것도 무장하지 않은 인간의 몸은 방망이 앞에서 한없이 무력할 뿐이었다. 아팠다. 맞은 곳이 온 몸이 쑤셨고 입술은 터져 피가 났다.
머리가 헝클어졌고 다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 뼈가 부러졌다. 일어설 수 없었다. 경찰은 내가 서지 못하는 것을 보자 다른 친구에게로 가서 폭력을 휘둘렀다. 내가 못 서는 것을 보고 아까 내가 일으켜 세워줬던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학교 남자애들을 데리고 나에게 다급하게 왔다. 그러나 내 시선은 맞고 있는 내 친구를 향해 있었다. 애들이 내 옆으로 우르르 몰리는 것을 보고 경찰이 최루탄을 던졌다. 최루탄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다. 몇 개가 더 던져지더니 금세 연기가 자욱해졌고 눈이 따가웠다. 애들은 최루탄 연기를 신경쓰지 않고 나를 어떤 애 등에 업혔다. 날 업었던 남자애가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 애가 나를 업고 뛰어가면서 내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그 목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려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모른다. 다만 그 상황에서 했던 생각은 기억이 났다. 친구들이 맞는 모습이 희미해져 갔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내가 괜히 시위를 하자고 해서 친구들이 다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미안했다. 친구들의 원망을 살까봐 두려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내 옆에는 우리학교 남자애인 것 같이 보이는 애가 침대에 엎드려 기대서 자고있었다. 내가 살짝 인기척을 했다. 그 남자애가 일어났다.
“깼네? 괜찮아? 아픈 데는 없어?”
“응. 괜찮아. 애들은?”
“음... 몇 명은 잡혀갔고 몇 명은… 너랑 비슷한 처지… 그리고… 나머진 아직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어.”
“아직도… 하는 애들이 있다고...? ... 애들이… 날 원망하지는 않아…?”
“아냐! 절대로. 애들은 오히려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고마워… 하고있다고…? 왜? 나 때문에 다들 다쳤잖아.”
“너 덕분에 다들 좋은 일을 했으니까. 그리고 애들 의지가 없었으면 애들도 너를 따르지 않았을 거야. 네가 주동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동자니까 죄책감 갖지 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애. 그 남자애 덕분에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추운 겨울에 들었던 그 애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난로나 모닥불보다 따뜻했다. 그 애의 말을 들어서였는지,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우리의 열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겨울은 내가 겪은 겨울 중에 가장 따뜻했다. 그리고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그 날의 작은 불씨는 그 뒤의 다른 항쟁들과 이어져 큰 화마가 되어 한국의 민주화를 이뤄내는 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