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민주화 바자회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문시우
2·28버스를 타고 도착했을때 동아리 친구들은 이미 주민센터 별관 주차장 앞에 모여있었어.
남학생들은 천막을 치고 있었고, 여학생들은 이제 막 도착한 듯한 상자를 트럭에서 꺼내고 있었지.
동아리 담당 선생님도 있었어. 선생님은 상자에서 꺼낸 잡동사니들을 간의책상에 배치하고 있었지. 직접 뜬 수세미부터, 안 쓰는 필기도구, 구멍 뚫린 옷. 평소라면 모두들 거들떠도 보지 않을 물건들이지만 오늘은 자선바자회니까. 잠시후 선생님은 천막 가운데에 플렌카드를 달았어. 모두의 노력 끝에 그럴듯한 바자회장이 차려졌지. 벌써부터 입고왔던 티셔츠는 땀에 젖었어. 집에서 얼려온 물병은 반쯤 녹아있었지. 나오고 싶지 않았는데. 동아리 기장으로서 어쩔 수 없었어.
한차례 정리를 끝낸 내가 한숨을 푹 쉬어보이자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웃어보였지.
우리가 오늘 판 물건은 기부에 쓰일 예정 있었어.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파는 물건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책상 위 물건을 뒤적거리다가도 그냥 가버렸어. 그러나 곧이어 팻말을 든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어.
그들은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모자를 쓰고 있었지. 그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어.
나는 다시 화색이 돌아 더욱 열정적으로 물건을 팔았어. 그러나 팻말을 든 남자는 주민센터 앞에 사람들을 모으더니 분주하게 무언가 준비하기 시작했어. 그들은 시위대였어. 시위자들의 손에는 저마다 문구가 적힌 펫말이 들려있었어. 독제타도와 항쟁같은 단어가 구호와 함께 섞여 귀에 박혔어. 곧이어 나는 그것이 2·28 시위 재현 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들이 입고 있던 검은 옷이 교복이란 것을 깨달았어. 시위대의 선두로 보이는 남자는 구호와 함께 시위대를 이끌었어.
사람들의 시선은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집중됐어. 이러다 어쩌면 바자회 물건을 다 팔기는 커녕 들고 왔던 물건들을 다지 가져가야할 수도 있었지.
그들의 현수막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 ‘2·28 민주화 열사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 나는 갸우뚱했어. 민주화 열사들의 희생이라면 교과서에 서 항상 듣던 말이니까.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걸까. 그보다 나는 바자회가 걱정이었어. 선생님은 그런 나를 바라보았지.
바자회와 시위가 끝난 오후, 나는 뒷정리를 돕고 있었어.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를 선생님이 잡았어. 그러곤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나를 주민센터 별관 안으로 데리고 갔지. 하얀색 콘크리트로 되어있는 별관은 밖에서 보다 안에 봤을때가 넓어보였어. 그리고 긴 복도를 지나 뒷뜰에 도달했을때,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고 말았어. 제일 먼저 보인 것은 2·2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희생자들의 이름이 세겨진 각명비였다. 나는 대체 왜 이런 것이 여기 있는지 혼란스러웠어.
그러나 이곳이 과거 시위가 있었던 경북도청이라는 걸 안 나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어.
건물을 자세히보니 정말 총탄 자국이 있었어. 석판 위에 음각을 내어 세겨진 이름들을 나는 손가락으로 쓸어내렸어. 건물 뒤에 자리한 석판은 오래도록 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지. 석판에 이름이 세겨진 사람들 중에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행방불명된 사람들도 있었어.
교과서만 보았을땐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지. 희생자들은 대부분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형 심지어는 나보다 어린 학생들도 있었어. 어른들은 어디로 가고 어린 학생들이 시위를 이끌었던 걸까. 그러나 아까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어. 나도 그들을 향해 무심하지 않았던가. 당장 내 할 일에 빠져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았던가. 만약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들과 함께 시위를 이끌 수 있을까. 나는 망설여졌다.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았어.
“선생님. 오늘 자선바자회에서 모금한 돈을 2·28 민주운동을 더 알릴 수 있을데 기부하면 어떨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여보였어. 선생님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있었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다른 민주화 운동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밖으로 나왔을땐 해가 지고 있었어. 집으로 가는 길 나는 2·28버스를 탔어. 그동안은 몰랐는데. 버스에는 민주화 열사들이 그려져 있더라. 차창 밖 노을이 붉게 타오르는 있었어. 힘차게 빛나는 태양이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열정 같아서. 나도 모르게 지긋이 주먹을 쥐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