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불길은 하염없이 타오른다
율원중학교 3학년 최서영
“백만 학도여!”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당당히 내지르는 고함에,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이윽고 목을 홱 비틀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찰나 동안 시커먼 진압봉을 들고서 학생들을 막으려 애쓰는 경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조차 무의미한 점이 된 채 시야 밖으로 가차없이 내쳐졌다. 사탕에 몰려든 개미 떼마냥 바글바글하게 모여든 학생들의 군집에 의해서, 혹은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완강한 반발에 의해서였다.

“와아아아!”

물론 나라고 한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이라면, 자유당 정부가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이 계획된 2월 28일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다는 것. 짐작하기로서 대구 지역 학생들이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몰려서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을 우려하는 듯싶었다. ‘단체영화관람’, ‘토끼사냥’, ‘임시 시험’ 등의 변변찮은 구실을 갖다 붙이면서까지 등교를 강행하는 꼴을 보아하니, 학생들이 어지간히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모양이지.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이러한 행위는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아무렴 맞는 말이었다. 조회단에 올라 결의문을 낭독하는 격양된 그 음성에 동조하듯, 일제히 수많은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한낱 소음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굉음이 귓전을 울리며 이윽고 뒤통수를 강타했다. 그와 동시에, 몇몇 이들은 당당하게 푸른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며 조회단을 향해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꼭 태양과 닮은 미소였다.

아아, 그리고 나는 이내 정신이 아찔해지고 말았다.

검은 교복을 입은 채로 하늘 높이 치켜든 팔.
누군가의 것이리라 어렴풋이 생각했던 그것은, 다름아닌 나였던 것이다!
저도 모르는 새에, 나는 이미 한낮의 열기에 취해, 학생들의 외침에 취해,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에 취해 양팔을 높이 들어 올린 참이었다.

“우리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릴 학도요, 조국을 괴뢰가 짓밟으려 하면 조국의 수호신으로 가버릴 학도이다!”

고조된 흥분의 파도에 휩쓸리듯 하며, 비로소 나는 남몰래 삼킬 뿐이었던 열망을 목구멍 너머로 토해내었다. 독재 정권 타도! 민주주의 만세!

“독재 정권 타도! 민주주의 만세! 학원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

우렁차게 외치며 시위를 이어나가는 익숙한 낯을 한 이들의 무리가 빠르게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분명하게도 모두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알았다.

뜨거운 태양볕이 내리쬐는 1960년 2월 28일의 오후.
단단한 발음으로 결의문을 낭독하던 아득하고도 힘찬 목소리.
침묵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함성과 박수 소리.

우리는 마침내 작은 불씨를 지폈고, 그것이 모든 부정한 것들을 집어삼킬 거대한 횃불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아주 먼 훗날에, 우리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이들을 위한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늘도 불길은 꺼지지 않고 하염없이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