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2·28학생운동과 그 뒷이야기
경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권대현
1960년 2월 28일. 이날은 3.15 대선을 앞두고 대구의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시위가 일어난 날이다.
대구 수성 천변에서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유세가 계획되어 있었다. 자유당 정권은 같은 당의 후보였던 조병욱 박사의 유세장에 가는 대신 장면 후보의 유세에 몰려서 언론에 주목을 받는 것을 우려하였다.
자유당 정부는 이를 방지하고자 대구시내 공립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다. 당국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온갖 핑계로 일요 등교를 강요했다. 당시 일부는 단체는 영화 관람이나 토끼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등교를 지시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유당의 꼼수가 들켜서 학생들이 분노하였다.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은 2월 27일에 시위를 벌였다.
장면 후보는 1956년 부통령 선거 당시 대구에서 무려 8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것은 대구의 들어서는 1960년 이후부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도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 남조선로동당출신이었던 박정희도 후보에게 종복물이를 암행했고, 이에 대구시민들이 반발심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총선에서는 신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이런 성향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한 1987년 선거 이후부터 이런 성향도 점차 사리지게 되었다.
나는 대구 사람으로 평생 이 일들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