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청춘들의 꿈
왕선중학교 2학년 이민정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횡포와 부패, 실정이 절정에 다다르며 국민들의 생활과 감정이 빈곤해지고 불법적 인권유린이 극에 달한 시대에서 일어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으킨 민주적 저항운동이다.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부정 음모가 진행되면서 정, 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0년 2월 28일 대구 시내 수성천변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의 선거 연설회가 계획되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자유당 정권의 악정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소리없는 여론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선거의 패배를 직감한 자유당 정권은 이성을 잃은 학생들이 유세장으로 몰릴 것을 예상하고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다. 어린 학생들마저 정치적 도구로 희생시키려고 한 것이다. 학교에 따라 갑자기 단체 영화 관람이나 토끼 사냥을 하런 간다는 핑계 등으로 일요 등교를 종용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의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간계를 간파한 학생들은 불의에 몸을 떨었고 그날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정권의 불법과 부정을 뉘우치게 하기 위해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당시 인구가 밀집했던 중앙통을 거쳐 경북도청, 대구시청과 경북지사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숱한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고통을 받았고 교사들도 모진 책임추궁을 받았다. 독재에 움츠렸던 언론도 마침내 2·28 학생의거를 보도함으로써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시위에 나섰다.
당시 아무도 함부러 나서지 못했고, 어른들도 말 못했떤 공포분위기를 고등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민주적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시민들도 경찰에 쫓겨 도피하는 학생들을 숨겨주는 등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2·28 민주운동은 당시 참여주체가 고등학생들이었지만 그 시대의 부모, 형제 가족의 암묵적 동의와 대구시민들의 시대정신을 담은 반독재 민주운동의 분출이다.

2·28 민주운동의 하나의 불씨가 되어 전국에 크게 퍼져나갔고, 3.15 마산의거, 4.19혁명, 4.26 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인 4월 혁명을 완수했다.

2·28 민주운동은 독재와 부정에 저항한 반독재 민주운동의 대구 시민정신의 표출이었고, 국가의 민주적 정통성을 심는 선구적 역할을 한 자랑스러운 대구의 역사이다. 80년 전 대구, 경북 시,도민의 자랑스런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