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자유의 천국에로
성광고등학교 2학년 이승민
일요일 정오를 꽤 넘은 때였다. 나는 터덜터덜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 손에 타고르의 시집을 들고 걷는 이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나는 이 시간을 즐기지 못할 것 같다.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이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위화감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야, 나 왔다.”
친구 명섭이가 미소를 띈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진짜, 왜 갑자기 휴일에 학교 오라고 난리고.”
“...니 오늘 뭐 하기로 했는지는 기억하고 있는 거 맞제?”
“아, 내를 뭘로 보는 기고? 걱정 붙들어 매라.”
다행히도 그의 가벼운 태도와는 다르게 오늘 해야만 할 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눈치였다. 언제나와 같은 명섭이의 말투에 살짝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듯 했다.
이윽고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명섭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교문을 지나고, 운동장에 도달했다. 이미 조회대 앞에는 학우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명섭이외 나도 곧장 조회대로 달려갔다. 나는 조회대에 다다르자마자 학생들 사이에 섞여 들어, 가만히 상황을 살핀다. 이미 다른 학교 학생들은 행동에 들어간 듯 했다. 명섭이는 이미 격양된 주변 분위기에 동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쉴 새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다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계는 12시 55분을 가리켰다.
갑자기, 학생회 선배들이 단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깜짝 놀란 선생님들의 제지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의 의지를 담은 결의문이 낭독되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살짝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교정에 서 있었다. 시작되었다. ‘데모’가 시작되었다! 공포심이 몰려왔다. 이로 인해 나는 결의문의 내용을 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익숙한 한 구절의 글귀가 귀에 스치는 순간,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 촛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오늘 학교에 오늘 길에도 다시 한번 되새겼던 그 시였다. 그래, 나의 조국은 빛나던 촛대였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문화를 꽃피우던 나라, 비록 외세의 압제에 시달리는 고난을 겪기는 하였으나, 계기 하나면 이전처럼 아름다운 빛을 발할 나라, 대한민국은 그러한 나라였다. 불안감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의욕이 마구 솟아나기 시작했다.
“뭐하노?”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명섭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형의 최후미에서는 이미 학생들이 교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
나는 대답 대신 한 번 씨익 웃어 보이고는, 몸을 후방을 향해 돌렸다. 중구난방으로 울려 퍼지던 구호 소리가, 점차 하나의 커다란 외침으로 합쳐져 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누군가 내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았다. 어느샌가 다가오신 담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놓으십시오!”
“안 돼! 야, 최영식이! 니 미쳤구나! 진짜 어쩌려고 이러는데!?”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요. 저는 지금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외치고는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려 하였으나, 강하게 잡은 선생님의 손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떼어낼 수 없었다. 사실은, 이 힘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한 분노가 아닌, 순수하게 제자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라는 사실이 선생님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기에, 나도 온 힘을 다해 뿌리치려고 하지는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얍!”
뭐라고 더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명섭이가 선생님의 팔을 내게서 억지로 떼어내고는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야! 박영식! 황명섭! 니들 진짜...!”
선생님께서는 화가 잔뜩 난 음성으로 소리를 지르셨지만, 우리를 잡으려고 쫓아오지는 않으신다. 우리는 그대로 있는 힘껏 달려, 교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자유의 천국’에로, 우리는 첫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