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2월 28일
경북공업고등학교 3학년 김민지
2·28 민주의거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자생적 시위였고 4.19 민주혁명의 도화선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근대사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이다. 특히 이 나라 민주화를 앞당긴 2·28 민주의거가 당시 고교 2학년인 어린 학생들이 주동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것이다.
2·28 학생운동이 자유당 독재 정권의 타도와 같은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또 자신들의 행동이 학생 혁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계산속에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2·28 학생운동이 단순히 일요등교에 따른 단순하고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뚜렷한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시대의식의 반영으로 일어났다. 현대 학생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민주주의의 실천 운동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2·28 학생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학생 대표들은 시위를 위해 하루 전날부터 구호를 다듬고 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외쳤던 구호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비판적 목적의식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임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 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고등학생들의 시위나 4.19 혁명은 2·28에서 비롯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또한 어떤 학자들은 2·28이 한국 학생운동사의 위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야당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고 어른들도 말하지 못했던 공포 분위기의 국가를 어린 학생들이 처음으로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대구 시민들도 도피 학생들을 숨겨주는 등 뜨거운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2·28 민주의거는 광야를 태우는 한 알의 불씨가 되어 들불처럼 번졌다. 마침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 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했다. 2·28 대구 학생 민주의거는 가난과 독재,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 시민 정신의 표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