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동상(2·28원로자문위원장상)
대구의 자랑 2·28 대구학생민주화운동
경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진찬욱
우리 대구 사람들이 대구를 떠올리면 뭐가 생각날까? 이월드, 팔공산, 동성로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구 시민들이라면 한 가지는 꼭 생각해야 한다. 그건 바로 2·28 민주화 운동이다. 2·28 민주화 운동은 대구에 살고 있다면 자부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큰 운동이다. 우리 역사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민주화 운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2·28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사회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갈등이었기에 일제강점기를 배운 것과는 마음이 달랐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하고 자유 또한 통제되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유일하게 무서워 한 조선인들의 만세소리.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의 만세 운동과 비슷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내가 느낀 감정은 달랐으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묘했다. 이 운동이 나라 안의 문제여서 공개하고 싶지 않고, 별로 오래된 역사도 아니어서 숨길 수도 있었지만 이것이 사회책에 실려 다행이고 다행이다.
대구에서 일어난 작은 불씨가 2000년도에는 모든 지역의 아이들이 함께 보는 책 안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성냥으로 피운 작은 불씨, ‘후~’하고 불면 꺼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하지만, 작은 불씨가 하나 둘 모이면 어느 새 누구도 말리자 못할 만큼 큰 불이 일어나게 된다. 2·28일 대구 학생들이 일으킨 큰 움직임은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선물해 주었다. 2·28 대구학생민주화운동의 불씨는 정부의 옳지 못한 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대구의 고등학생이 서로서로 작전을 짜고 조심히 행동하였다. 나는 말을 듣기만 해도 눈 앞이 캄캄하고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민주화 운동은 어른들이 아닌 나랑 비슷한 나이의 형, 누나들이 이뤄낸
엄청난 결과이다.
지금은 일흔 여든도 넘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10대의 어른 고등학생이었고 그러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정부당국은 고등학생들이 야당이 유세하기로 예정된 일요일에 학생들이 몰려들면 여론이 더욱 형성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학생들을 강제 등교하여 민심을 흩어 놓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똑똑한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맞서 일어났다. 나라면 그저 편안한 주말에 등교를 강요당하는 것이 귀찮고 짜증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고등학교 학생들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분노한 듯하다. 그들이 어쩌면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면서까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은 존경스러움 그 이상이다.
나는 그 나이에 민주화 운동과 같은 역사를 바꿔 놓는 대단한 일에 참여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존경스럽고 그 분들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자신은 있다. 나도 그 분들과 같은 마음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남을 도와가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