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아버지, 어머니께
성광고등학교 2학년 민선재
아버지, 어머니께
아버지, 어머니 제가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말로는 도저히 하지 못해서 이렇게 편지를 써봅니다. 바로 말하자면 내일 앞당겨진 기말고사를 치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게 너무나 중요한 시험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계속 편지를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착한아이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키울 때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었다고, 정말 말썽하나 안 피우고 자랐었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제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장난감 하나 사달라고 떼를 쓴 적도 없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움 한 번 안 했었죠. 동생이 태어난 후론 동생에게 양보를 했었습니다. 몇 벌 없는 옷도, 몇 개 없는 연필도, 좁은 내 잠자리도 양보했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 피해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마음에 오히려 동생을 사랑으로 돌봤습니다. 저는 제 것을 포기하면서 들었던 착하다는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학교에서도 당연히 양보하는 이런 모습이기에 모두가 저를 착한아이라 부릅니다.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그런 착한 아이라고. 하지만 저를 정말 착한 아이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좋은 마음으로 양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양보하며 마음속으로 욕을 했습니다. 마냥 좋던 착하다는 말은 차츰 불편해졌습니다. 나의 양보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양보해 가면서, 아니 빼앗기면서 답답하고 분했지만 반항을 할 순 없었습니다. 항상 양보해 주는 착한아이였기에 모두를 실망시킬까봐 당연히 내 것인 것을 내 것이라 말하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 싫다고 매일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부모님이 일기를 보고 제 것을 빼앗지 않겠다고 말해주기를 내심 기다렸는데, 꽁꽁 감춰두었기에 부모님은 끝끝내 그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나쁜 아이입니다. 앞으로 양보하지 않는, 빼앗기지 않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 멍청한 아이는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저희 반에 한 학생이 전학을 왔습니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무서운 선생님께 반항을 했습니다. 어쩌다 생긴 오해 때문에 억울하게 맞았는데 부당한 체벌이 부당하다고 소리 내 말하는 그 아이가 왜인지 멋있어 보였습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소리 내 말할 수 있는 용기. 일기 따위에나 적어놓고 혼자 속 썩이는 것이 아닌, 직접 소리 낼 수 있는 용기. 아, 저는 저 용기를 지금까지 왜 가지지 못했을까요. 어디에도 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누구보다 국민을 위해야 할 사람들이 국민의 소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입을, 동의를 표현할 수 있는 팔을 당연하게도 빼앗아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것을 한번 빼앗긴다면 계속, 계속, 계속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25일에 일요일에 등교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저는 부당함을 느꼈습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었고 학우의 집에서 모여 내일 민주화 시위를 하는 것으로 정했고 결의문도 함께 작성했습니다.
“백만 학도여! 핏기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신성한 권리, 자유. 제가 지금까지 빼앗긴 것보다 값진 것입니다. 저는 모두를 위해 용기를 낼 것입니다. 소리 낼 권리를 빼앗기지 않게 직접 소리내는 용기가, 이 마음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다른 어른들에게도, 모든 사람에게까지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외침이 더 큰 외침으로 커질 수 있는 첫 발걸음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 편지를 다 읽으셨을 때쯤에는 저는 시내 한가운데를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독재 타도” 이 함성이 온 곳에 울리게 될 것입니다. 시험을 치지 않고 시위를 하러 나간 저를 혼내지 말고 응원해 주세요. 내 권리를,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된 저를 이해해 주시고 살포시 안아주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선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