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민주주의 씨앗, 2·28 민주운동
서울진명여자고등학교 3학년 오인영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 일주일 만에 얻은 주말인 만큼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시험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월요일에 볼 시험은 한국사와 수학이었다. 특히 한국사는 미리 공부를 해두지 않아서 마음이 조급했다. 시험 범위는 일제 통치부터 현대의 민주주의의 발전까지, 꽤 많은 양이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 역사 교과서를 폈다.
하지만 급하게 공부를 하려 한 탓인지 교과서를 읽고 있어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30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방문 밖에서 나와서 과일 먹고 공부하라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는 광복 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에 대한 부분을 읽던 중이었다. 나는 과일을 먹으며 공부할 생각으로 역사 교과서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주방으로 가니 이미 할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복숭아를 먹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책을 내려놓고 포크로 복숭아를 집었다.
“아이고 우리 서연이, 많이 바쁜가? 과일 먹으면서 까지도 공부를 하네.”
할아버지는 복숭아가 담긴 그릇을 내 쪽으로 밀어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대충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공부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내가 가지고 온 역사책을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1960년대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 이 부분이면 할아버지도 꽤 아는데. 할아버지도 이때 학생이었잖냐. 우리 때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시위를 하기도 했었지.”
나는 학생들까지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를 벌였다는 말에 놀랐다. 복숭아를 집은 포크를 잠시 내려놓고, 나는 할아버지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여쭈어봤다.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2·28 민주 운동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셨다.
“2·28 민주 운동이요?”
나는 생소한 이야기에 고개를 저었다. 3.15 부정선거나 4.19 혁명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어도, 2·28 민주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살짝 미소 지으시더니 말씀해 주셨다.
“할아버지가 어릴 때 대구에서 살았었단다. 나도 친구들하고 같이 시위에 나갔던 기억이 있어.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이었지. 그때는 우리도 서연이처럼 기말고사를 보는 시기였어. 지금처럼 그 당시도 일요일엔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에 28일, 일요일에 시험을 보겠다는 학교의 안내가 내려온 거야. 알고 보니 대통령 후보인 장면의 선거 연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조정한 거였지.”
일요일 등교에, 시험을 갑자기 일찍 치르겠다는 통보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상대 후보의 연설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얼른 그래서 어떻게 됐냐며 물어보았다.
“그래서 결국 학생들끼리 담합해서 시위를 하게 됐지.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열정을 정치의 도구로써 이용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학생들은 각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단다. 지금 당장은 선거권이 없더라도, 우리가 커서 만들어갈 세상에 대해 미리 우리가 직접 알아야 할 테니까 말이야.”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어도, 학생 시위에 관한 것들은 흔하게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같은 고등학생으로서, 그 당시에 내가 있었더라면 민주주의를 위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당시의 학생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한 학생들과, 그 용기 덕에 현재 나와 같은 학생들이 올바른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사를 단순히 암기하기 어려운 과목이라고만 생각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는 수없이 많고, 그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모든 학생들과 열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2·28 민주운동에 대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 우리의 역사이니까, 나와 같은 학생들이 이루어낸 민주주의 시작이니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역사 교과서를 들어 올렸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