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선생님께 보내드리는 편지
동부고등학교 1학년 강지웅
1960.02.27
선생님, 시위와 혁명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위는 운동을 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려는 것이고, 혁명은 운동을 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저희는 내일 일어날 그것이 혁명이 되거나 혁명의 근원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사실,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누군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안대를 우리에게 씌워 두 눈을 가리려고 하는 속셈을 말입니다. 저희는 이 무형의 안대를 벗어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뛰어들겠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춥고 깜깜한 밤이나 깊은 구렁텅이나 피차일반 아닙니까. 그리고, 그 구렁텅이 속에는 저희가 그토록 바라던, 원래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앎이 있습니다. 물론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앎은 이따금 괴로움을 동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삶을 연명하는 것은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그저 천천히 죽어가는 것뿐이죠. 저는 괴로울지라도 앎을 통해 진정한 삶을 쟁취하겠습니다. 진정한 삶이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오감으로 체
감할 수 있기에. 2월 28일에는 민주당 강연이 있는데, 왜 하필 많고 많은 날 중 2월 28일을 시험일로 바꿨을까요? 그것은 그저 시험 일정을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험 일정을 바꿈으로써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겐 곤란함이 생길 것이고, 휴일인 일요일에 시험을 치는 것은 학생에게서 쉴 권리를 빼앗는 것이며, 정말로 2월 28일에 시험을 치는 것이 민주당 강연을 못 가게 만들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학생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당의 강연을 가든 그것은 학생 개인의 자유 아닙니까?
처음엔 이렇게 학교 시험을 치는 것을 핑계로 학생들의 자유를 빼앗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희의 자유를 뺏는 방도는 더욱 험악해질 겁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이번 일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언젠간 이러한 부조리에 쇠퇴하게 될 이가 선생님이 될 수도, 선생님의 가족이 될 수도, 저희 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 국가 안에 살아있는 한, 사회 부조리와 맞서 싸울 겁니다.
마침 결의문도 다 작성했습니다. 저희는 내일 오후 한 시, 운동장에서 이 결의문을 낭독할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릴 학도요, 조국을 괴뢰가 짓밟으려 하면 조국의 수호신으로 가버릴 학도이다. 이 민족애의, 조국애의 피가 끓는 학도의 외침을 들어 주려는가? 우리는 끝까지 이번 처사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있을 때까지 싸우련다.” 저는 저희가 자랑스럽습니다. 내일 만약 상황이 좋지 않아 구치소에 들어가거나 절명할지라도, 정부는 깨달을 겁니다. 저처럼 어린 학생들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것을, 학원을 정치도구화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 인간의 삶이란 이제 막 개화한 신선하고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하늘을 향해 불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죠. 꽃잎은 아래로 떨어지지만, 불꽃은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합니다. 저희는 혜화OO인 셈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이 편지를 보내드리는 이유는 단순히 제가 선생님을 굳게 믿어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항상 저희의 뜻에 동참하셨기에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드리는 겁니다.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올바른 일은 올바른 결과로 귀결된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올바름이 순회되길 바랍니다.
이제 곧 여명이 뜹니다. 여명의 빛은 등불의 빛과 같습니다. 우리의 횃불이 등불이 되길 바랍니다. 저흰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지언정, 과거를 돌이킬 순 있습니다. 그건 선생님과 어른들 또한 마찬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