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류장은 2·28 기념공원 앞입니다” 알을 깨트리기에는 너무나 약한 힘이었다. 어릴 적부터 수십 번 부딛혔음에도 단단한 알 껍질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2·28 민주화운동이라는알을 가졌고, 어릴 적 시내와 가까이 살아 알을 간지럽히는 힘을 수십 번 느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주말마다 들은 버스 안내방송으로는 알을 간지럽히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의 알은 매번 간지럽혀지기만 할 뿐 손톱만한 금도 생기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알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알은 매끈매끈한 표면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알은 앞으로도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겠지 싶을 때, 갑자기 알이 쩍 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알의 틈에서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마법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태 역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대구에는 절대 역사의 향기가 묻어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내게, 알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나의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먼저 알에서 아기 새의 발이 나왔다. 아기 새의 발은 2·28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려 주었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뼛속까지 물들지 못한 나라였다. 당시 대구는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민주당을 지지하는 추세였다고 한다. 그래서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을 꼭 당선시켜야 되었던 자유당은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후보가 수성천변에서 유세하는 것을 방해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당은 학생들이 장면 후보의 연설을 보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로 일요등교 명령을 내리게 되어 일어났다고 말해 주었다. 그 다음 알에서 아기 새의 몸이 나왔다. 아기 새의 몸은 학생들이 듣기만 해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 일요등교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려 주었다. 먼저 일어난 것은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일요등교 전날 자유당의 부당한 일요등교 명령을 깨닫고 “학생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 고 소리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시작을 이어서 여러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줄줄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일요등교와 수성천변 유세가 있을 당일이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여 집회를 시작했고,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학교를 뛰쳐나가, 반월당, 중앙로를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기 시작했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시위대는 점점 더 불어났다고 말해 주었다.
아기 새의 몸이 절반 가까이 나오자, 이번엔 아기 새의 날개가 나왔다. 아기 새의 날개는 학생들끼리 시작한 운동이 어떻게 교사, 시민과 같은 모든 사람들의 힘을 모아 자유를 향해 날아오를 힘이 되었는지 알려 주었다. 학생들이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들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여러 시민들이 학생들의 시위대를 보고 학생들을 진압하는 경찰에게 달려들어 막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시위에 동참해 힘을 보태었다. 이렇게 시민들의 힘이 세지자, 학생들을 체포한 경찰들은 결국, 형을 줄이거나, 학생들을 석방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마침내 아기 새는 머리를 오랫동안 감싸고 있던 알 껍질 밖으로 내밀었다. 아기 새의 머리는 이렇게 의미 있는 2·28 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 주었다. 2·28 민주화운동은 고등학생들이 나서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부당한 정부와 맞서 싸운 운동이었다. 2·28 민주화운동은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 되어 여러 민주화운동과 4.19 혁명을 이끌어 내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달리기 경주의 시작점이었음을 말해 주었다.
나는 마침내 아기 새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단단히 금 하나 가지 않던 알이, 마침내 깨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알에서 깨어난 건 아직까진 아기 새 뿐이다. 나는 아기 새가 2·28 민주화운동에 대해 더 깊이 깨닫고, 자라서 2·28민주화운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 주는 커다란 날개로 힘차게 날아오르길 바란다. 그래서 아기 새가 커다란 날개로 다른 알들이 깨어날 수 있게 품어 주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