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대상
“2·28 민주운동을 만나다”
대구동신초등학교 6학년 김소율
작년 가을 일요일 아침 “얼른 일어나?” 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는 나를 단잠에서 깨게 했다. 비몽사몽간에 “일요일인데 왜 깨워? 더 자고 싶단 말이야”라고 이불속으로 파고들던 그 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엄마는 “지금 출발해도 늦었어. 빨리 일어나서 준비해.”라고 커튼을 확 걷었고 난 어쩔 수 없이 욕실로 향했다. 하품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얼마 전 엄마가 두류공원에서 ‘2·28 청소년, 시민 걷기 챌린지’가 있다고 했을 때 씩씩하게 꼭 참여할 것이라고 했던 내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외출 준비를 하는 내내 귀찮은 마음에 ‘괜히 한다고 했나. 잠이나 더 잘 걸’이라는 후회를 하면서, 어느새 우리 가족은 두류 공원에 도착했다.
우뚝 솟은 2·28 기념탑 옆 접수 장소에 도착하자 두 개의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고, 접수를 하고 공원 내 걷기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을 뒤 35분 정도 소요된다는 코스 시작점에서부터 우리 가족은 걷기를 시작했다.
걷기 코스가 길지 않아 부담이 없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상쾌한 바람과 초록 빛깔 나무들 사이를 산책하며 걸어가고 있었고, 나무 사이로 청솔모가 다니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리는 노래 소리에 다가가 잠시 멈춰 감상하기도 했다. 이런 여유로운 가을을 느끼며 걸어가던 중 길 가운데 세워져 있던 흑백 사진들... 이렇게 평화롭게 공원을 거닐고 있는 나에게 “훅”하고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다. ‘내가 오늘 여기 온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보이는 교복 입은 언니, 오빠들의 결의에 찬 모습들이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내가 여기 온 것은 ‘2·28 민주운동 6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런 마음속의 울림과 함께 책에서 본 얼핏 기억나는 그들의 외침들이 내 귓가를 맴돌며 어느새 난 사진 속으로 빠져들며 2·28 민주 운동과 만나며 걸음을 멈추었던 것 같다.
야당인 장면 박사가 유세하기로 되어 있던 날! 경북고등학교에서는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이유로, 또 다른 고등학교들 역시 토끼 사냥이나 영화 관람들을 이유로 학생들의 일요일 등교를 강제로 지시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용기 있던 학생 8명은 시위를 조직하고, 결의문도 작성하기도 했다
오늘 나의 평온한 일요일과 정반대였던 1960년 2월 28일 그날의 일요일!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교사들의 말림을 개의치 않고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일으키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고 이런 행동에 “학생들이 북한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항하기도 했다. 아무 죄없이 희생당한 용기있는 많은 학생들과 깨어있던 시민들의 응원 때문일까? 이날의 일은 2·28 민주운동이라고 불리워지며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고 4.19 혁명으로 발전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2·28 민주운동에 관한 것들과 민주주의를 외치며 비장한 표정을 한 사진 속의 언니 오빠들 모습들이 겹치며 한동안 멍해있던 나에게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어? 가자” 라는 아빠의 말에 난 그제서야 현실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가벼운 생각으로 이 만큼 걸어왔는데 이 후 남은 걷기 코스는 그 당시 언니 오빠들을 존경하는 마음 때문인지 경건한 마음 때문인지 무거운 발걸음이 되었다.
비록 걷는 거리는 짧았지만 2·28 민주화 운동을 한참 생각하던 내 마음의 길이는 너무나 길었던 길, 드디어 도착 지점에 다다랐다. 운영 부스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운영자분들은 챌린지 취지를 설명하며 참가를 권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착순 마감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현장에서도 접수를 받는 것을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난 ’2·28 민주화 운동‘에 관한 관심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완주 기념품을 받고 돌아서는데 처음 두류공원에 도착했을 때 스쳐지나가며 보이던 기념탑이 나를 다시 붙잡았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라는 그 당시 언니 오빠들의 외침들을 대신하며 뜨거운 햇볕 아래 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잊지 말고 꼭 기억하라고.. 다음에도 꼭 함께 하자고’ 하는 말이 귓가를 적셨고, 내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 수 있게 해준, 오늘 2·28 민주운동을 만나게 해 준 언니 오빠들을 꼭 찾아올 것이라고 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