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검은 행진
판교고등학교 3학년 박준영
카메라맨은 한강에 모인 50만 여명의 사람들을 찍고 있었다. 한 남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일개미가 여왕개미 앞에 서 있듯이. 사람들은 남성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자신의 공약을 말했다. 민주주의라는 말에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세요?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대문을 열었다.
밖에는 아들의 학교 선생님이 서 있었다. 할 말이 있어 이곳에 들렀다고 선생님이 말했다. 당황한 나는 인사를 한 뒤 물 한잔을 내어 드렸다. 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뒤 아들이 무슨 문제를 저질렀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 3.15대선 때 후보자 중 누구를 뽑을 건지 결정 했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정하지 못 했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내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이승만을 뽑는 건 어떠신지요? 저런 연설은 보시지 않아도 되구요.” 그의 눈은 티브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농사나 짓는 제가 후보자가 누가 있는지 알겠습니까. 선생님이 추천을 해주시니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요.”
선생님은 그제야 만족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그럼 이만 가보겠다며 이 곳을 떠났다. 컵을 치울 때, 그가 있던 자리에는 노란 봉투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봉투 속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가 좋은 선생님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내가 목마르냐고 묻자 아들은 선생님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었다. 별 얘기 안 했다고 말했다. 내 손에 쥐어진 봉투를 쳐다봤다. 선생님이 내게 이승만에게 투표하라고 말한 게 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아들의 방문을 열었을 때, 아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일요일인데 왜 교복을 입는지 물었다.
“학교에서 영화 관람을 해준대요.”
다른 학교 학생들도 오늘 학교에 나가냐고 물었다. 아들은 친구 정식이가 토끼 사냥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고 했다.
“늬들이 사냥개냐?”
나는 우스갯소리로 물었지만, 아들은 웃지 않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들은 문밖을 나섰다.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여럿의 목소리가 합쳐진 소리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영화관람을 한다는 아들의 학교 교복이 보였고, 토끼몰이를 한다던 아들 친구의 교복이 보였다. 혹시 무슨 기념일인가 싶어서 급히 달력을 확인했다. 2월 28일. 기념일도 어떤 행사가 벌어지는 날도 아니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어 밖으로 나갔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단체로 행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주먹을 쥐고 팔을 흔들며 물러가라고 말했다. 한 학교 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박수를 치는 어른도 보였다. 나를 빼놓고 다들 계획이라도 한 듯 했다. 나는 학생 한명을 잡아 무슨 일인지 물었다. 학생은 정부가 우릴 막으려 한다며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곤 유유히 떠났다. 나는 저 시위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느꼈다. 경찰은 진압 봉으로 학생들을 막을 것이고 시위가 커진다면 총에 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시위대 사이에서 무언가 써진 흰 끈을 머리에 두른 채 소리치고 있었다. 아들을 불러보았지만 내 목소리는 금세 묻혔다. 나는 길거리를 가득 채운 학생들의 목소리와 끝없이 나열된 시위대를 보았다. 검은 행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