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횃불이 되어
성광고등학교 1학년 정하윤
눈을 떠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캄캄한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싱그러운 숲 속에서 엄마와 함께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낯설고 두려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때 무언가 나와 부딪혔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처음 보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의 등 뒤로 수많은 친구들이 더 있었다. 그곳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내 마음 속에 있던 먹구름이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출구를 찾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좌절하고 포기하려던 그 때 ‘덜커덩’ 하고 문이 열리더니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환호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더니 함께 있던 친구들을 잡아갔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나를 ‘휙’ 낚아채 갔다.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의 손에 들린 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우리를 잡아간 무리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세우더니 우리 머리에 불을 지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친구들의 머리에 붙은 불을 보고 있던 사이 내 머리에도 불이 붙었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내 비명과 함께 머리가 타들어가면서 온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은 더 활활 타올랐고 나는 비명을 계속 지른 탓에 목이 잠겨 버렸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내 머리에 붙은 불이 어느 순간 더 이상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나와 불이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깜짝 놀랐다. 나를 꽉 붙잡고 내 머리에 불을 붙인 검은 옷의 사내가 다름 아닌 학생이었던 것이다. 딱 보기에는 어른 같은 얼굴이지만 피부에 난 붉은 반점과 옅게 난 콧수염은 그들이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학생들은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린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 “학원의 자유를 달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했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학생들의 시위에 횃불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무슨 시위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학생들의 굳세고 강한 외침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타올랐다. 나는 힘을 주어 내 머리의 불꽃이 더욱 밝게 타오르도록 만들고 학생들과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소리치기 시작하면서 아까 전 우리의 비명은 함성이 되고 뜨거웠던 불은 빛나는 밤하늘의 별과 같이 거리를 환히 비추었다.
그렇게 시위가 잘 마무리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일은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갑자기 등장한 경찰들이 학생들 앞을 막아서더니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학생들은 우리를 막 휘두르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며 저항하였다.
그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어른들은 달려와 경찰을 뜯어 말리고 학생들을 향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결국 시위대는 진압되었고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체포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뜨거웠던 현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2월의 어느 날 우리 모두는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횃불이 되었다. 나는 잊을 수 없다. 불의를 부수기 위해 목숨을 건 백만학도의 외침을...
“백만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