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잔월(殘月)
경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이정빈
오늘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느 때처럼 희연이는 지각을 해서 운동장을 돌고 교실에 들어왔다. 소정이와 놀고 있던 나는 희연이가 들어오자마자 오늘도 지각을 했냐며 놀렸다. 희연이는 그만 놀리라며 대뜸 화를 내었다. 이렇게 오늘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우리 셋이 다 모여 놀고 있던 와중에 들려오는 소리.
“일요일도 학교에 나와라.”
뭐? 일요일도 나오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 반은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었다. 희연이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우리와 학교를 행한 비난을 했다.
불만을 가진 채 집에 갔다. 아빠가 틀어 놓은 뉴스가 내 귀에 들려왔다. 가방을 던지고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는 “대구의 공립 고등학교는 일요일도 나가야 된다.”였다. 아빠가 뉴스를 끄기 전, 나는 이미 이성을 잃은 눈빛이었다. 그렇게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도 이를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었다. 왜 이런 정치가가 생겨났는가. 왜 우리는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여 하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 학교에 갔다. 희연이는 오늘 지각을 하지 않았다. 이해가 된다. 그만큼 우리도 충격을 먹었으니. 우리 학우들은 수업시간과 점심시간에 비밀쪽지를 나누었다. 쪽지에는 ‘학우들이여, 우리 함께 모여 2월 28일에 목소리를 내자’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래! 모두 민주화 운동을 해보는 거야. 나의 친구들에게 너희도 할 것이냐 물어보았다. 희연이와 소정이는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며 소리쳤다.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던 28일이 되었다. 대구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역시 모두가 불만이었던 거야. 그렇게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소리쳤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
계속 소리쳤다. 입에서 피맛이 날 때까지, 몸이 부서질 때까지 소리쳤다. 앞에는 선배가, 뒤에는 후배가, 옆에는 내 친구들이 모두 손을 하늘로 뻗으며 외쳤다.
계속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중, 어떤 학생이 조회단에 올라가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희연이와 소정이는 나를 붙잡고 조회단 앞으로 가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이 말을 듣고 우리의 피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결의문을 다 낭독한 후 학생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교문을 나서서 한 번 더 외쳤다. 나도 외치며 하늘에 빌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우리의 소원을, 우리의 꿈을 들어달라고. 아빠가 그토록 위험하다고 신신당부하며 말리던 민주화 운동은 모두의 눈에 불을 켰다. 마치 배가 고파 누구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호랑이와 같았다.
목빠져라 소리치며 가던 도중에 ‘탕!’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어라? 이 소리는? 그래, 총이다! 시끄럽게 귀를 때리던 소리는 총소리였다. 경찰이 나타나자 그렇게 공격적이던 학생들은 겁을 먹은 듯했다. 약간의 정적은 겁을 먹은 것일 뿐, 우리의 불타오르는 열기는 경찰이 와도 다 잡지 못하였다.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자. 총이 있다고 우리를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다.
경찰들이 진압봉을 들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몇몇 학생들이 쓰러졌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쓰러진다. 안 돼,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희연이가 소리를 지른다. 잡히기 싫다는 희연이에게 소정이가 우리는 잡히더라도 문제 없을 거라고 한다. 희연이와 나는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정신을 잡고 다시 구호를 외치니 옆에 있던 희연이와 소정이가 없어져 있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경찰들의 발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 쪽을 따라가다 보니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아는 얼굴이었다. 어? 희연이다. 잡히기 싫다던 희연이가 무엇 때문인지 신음을 내며 쓰러져 있었다. 내 얼굴을 본 희연이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은 괜찮으니 내 몫까지 소리쳐 달라는 희연이를 길가로 뉘인 후 다시 만난 소정이와 손을 잡고 다시 목소리를 세상에 내기 시작했다.
곳곳이 아수라장이 되어 처음 줄지어 목소리를 내던 많은 학생들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흩어진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실려 있었다. 나도 목이 쉴지언정 끝까지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고,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이 눈물은 그냥 슬픔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힘은 없지만 꿈이 가득한 우리가 절실히 바라는 무언가를 위해 행동한다는 벅참,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안도감, 우리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든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가 같이 담긴 것이리라.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조용히 끝나가는 듯했다.
몇 년 후, 나는 결혼을 하고 주부가 되어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때의 내 친구들이 가끔 생각났다. 그 때의 내 친구들과 학우들은 열의를 가진 풋풋한 고등학생들이었다.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부당함에 거리를 행진한 그 때 그 일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 자식들이 그 때보다 더 나은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고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 생활할 수 있는 나라에 살게 되었다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과거의 친구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고맙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는 나를 비롯한 백만 학우들의 잔월이 남아 있다. 이 잔월은 앞으로 더욱 빛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