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민주운동의 촛불
경북공업고등학교 2학년 최성빈
당시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이라 불리는 자유당 독재의 부정부패, 언론장악, 인권탄압 등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3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야당 후보인 신익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1956년 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당 장면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과 이승만 정부는 최악의 부정선거를 계획합니다. 그 중 하나가 대통령 유세가 있던 대구의 학생들이 야당인 장면 후보의 유세장에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구 시내 8개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를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하기로 하고 상호 연락망을 구축하여 시위를 하게 되었는데 경북고생 800여 명이 대구 중심부인 반월당을 거쳐 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여 시위대는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시위대를 저지하던 경찰들이 학생들을 구타하였습니다. 이러한 학생을 시민들이 숨겨주고 사위대에 박수를 치며 동조하였습니다. 시민들과 학생들이 합세해 저녁 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하였고, 그날 시위현장에서 약 22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경찰에 연행되면서 각 학교 내 교사들도 모진 추궁을 받았습니다. 대구지역 언론은 어린 고등학생 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2·28 대구학생의거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으로 학생시위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15 마산의거에 이어 4.19 혁명이라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저는 2·28 민주운동에 동참해 열심히 끝까지 시위한 그 당시 대구 학생분들과 주민 여러분들의 희생과 노력 덕에 편안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28 민주화 운동은 잊혀지지 않을 역사이고, 정말 대단한 운동입니다. 이 일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