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내가 만약 그날의 학생이었다면
경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이정빈
저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날의 그 학생 분들의 시위가 없었으면 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우리 학생들은 얼마나 무시당했을지 모릅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현재 학생들도 결코 민주주의 사회에서 약자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작은 시도가 점점 커져 다수의 목소리가 되었을 때, 그것이 진정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참된 활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28의 주역들에게 존경하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국어 선생님께서 주신, 2·28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그분들에게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학생 신분으로 그런 용기와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니 감탄하게 될 따름입니다. 그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볼까 합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권 치하였습니다. 비민주적인 개헌과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늘려가는 시절이었지요.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당국이 대구의 8개 공립학교에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였습니다. 이것이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만약 학생들이 이 부당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비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 기간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경북고 이대우 학생부위원장님께서 8개의 공립학교의 학생들이 모여 부당한 일요등교에 대하여 항의하려 시위를 조직하고, 결의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그 결의문에는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해석하기에 이 말은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기간을 연장하는 부당함 속에서 우리 학생들의 권리가 제한되고 있으니, 서슴지 않고 이에 맞서 투쟁하자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결의문은 2월 28일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이대우님께서 학교 조회단에 올라가 결의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이때 이 결의문을 통해 하나, 둘의 마음이 뭉쳐져 부당함을 느낀 학생들이 단체를 구성하여 시위를 꾸려갔죠.
이 내용만 보았을 때 ‘이게 학생들끼리의 단합력으로 할 수 있었을까’, ‘나였더라면 그때 어떻게 하였을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생 신분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시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투표권이 없는 학생이더라도, 부정함을 바로잡는 참된 학생들의 시위라니,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저였더라면, 사회의 통치 분위기에 짓눌려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지만, 경북고등학교 학생부위원장이신 이대우님은 그런 분위기에서도, 잘못됨을 바로잡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의 잘못됨을 바로잡으려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점차 규모를 키우기 시작하였죠. 이날 경북고 학생 800여 명이 반월당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향했으며 이들은 잘못된 것을 항의하며 중앙통 매일신문사를 지나가며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당사, 경북도지사 관사 등을 지나다니며 자유당의 잘못된 행위를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시민들은 이 학생들의 용기에 힘입어 그들에게 박수치며 동조하고, 경찰들에게 구타당하는 학생을 숨겨주었죠. 이 과정에서 나머지 공립학교 경대사대부고와 대구상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등의 학생들도 참여하기 시작하였죠. 시위현장에서 220여 명의 학생들이 채포되고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경찰들은 각 학교의 교사들께 잘못한 일을 샅샅이 따졌죠. 하지만 모든 학생이 연행되기까지 학생들은 끊임없이 계속 시위를 하였고, 끊임없는 학생의 투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학생들의 시위죠. 경찰이 연행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계속 투쟁하는 모습이 멋있기만 합니다. 아마 제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며 시위하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이것이 2·28운동의 흐름입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의 억압에 눌렸던 언론사는 고등학생들의 용기에 힘입어 기사를 냅니다. 그리하여 그 기사가 퍼져서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으로 ‘학생 시위’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고 2·28운동을 통하여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가치를 세우게 됩니다.
모든 민주주의적 투쟁이 학생으로부터 시작했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투표권도 없는 학생이 투쟁을 하여 대한민국의 비민주주의적 부정을 바로잡는다니,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참된 시민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시절에 있었다면 쉽게 이루지 못하였을 겁니다. 정부나 사회에서 부당한 일이 있으면 시위를 통해 나의 의견을 표출하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나, 그 당시 사회분위기도 그렇고 그런 억압적인 상황에서 의견을 모으기 힘들었을 텐데, 그로 인해 저는 당연히 지켜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기회로 바꾼 이대우 학생부위원장님의 모습을 본받아, 저도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용기로 의견을 표출하는 멋진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고, 그런 부당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기르고, 또 힘든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항상 그 당시 억압된 환경에서 경북고, 경북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고,대구공고, 대구농고, 대구여고, 대구상고 등의 수많은 학생들이 노력하여 만든 환경에서 부당함이 없는 사회와 부당함이 없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지금의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니겠습니다. 지금까지 경북공업고등학교 이정빈 “내가 만약 그날의 학생이었다면” 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