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2월 28일
왕선중학교 1학년 정유빈
2·28 민주학생운동 그 날은 끔찍했다. 원래는 등교하지 않았던 일요일에 등교를 시키다니. 그것부터가 끔찍했다. 등교지시를 내린 이유는 너무 뻔했다. 선거를 위한 장면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간파한 우리 학생들은 긴급회의를 열었고 부당함을 지적하며 일요등교를 철회할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의 등교 철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 화가 나 일요등교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하기로 하고 상호 연락망을 구축하고 결의문을 작성했다. 이때 정말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군인들에게 체포되면 어쩌지란 두려움이 들기도 했고, 우리의 시위가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해보기로 했다.
2월 28일 낮 12시 55분,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학교 조회단에 올라 어제 작성했던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결의문 낭독은 격앙되어있던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며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28일 오후 1시쯤 우리 학교 800여명이 반월당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대구는 곧 불의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인구가 밀집되어있던 매일 신문사를 거쳐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상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불의를 규탄했다. 이 상황에 정말 화가 나기도 했고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든든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하고 시위대에 박수치며 동조해주었다. 괜히 내가 다 감사했다. 이게 한 나라의 국민이구나 하고 감동스럽기도 했고 모두 같은 마음이란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다른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교내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거나 시위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위현장에서 약 220여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됐고 연행되며 각 학교의 교사들도 모진 책임추궁을 받았다. 안타깝기도 하고 죄송했다. 그 날의 기억을 더 떠올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