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63년 전의 함성
왕선중학교 1학년 류한석
2·28 민주운동이 일어난 1960년에 나는 19살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는 이승만(자유당)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통령으로 자유당인 이기봉 후보를 당선시키고 싶었지만, 민주당의 장면 후보 역시 만만찮은 후보였다. 장면 후보가 1960년 2월 28일 수성천변에서 선거 연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이에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대구 지역 학생들이 몰려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우려한 자유당은 이를 방해하려고 등교를 지시했다. 이때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는 시위를 벌였고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학생인 나는 친구 7명과 아주 훌륭한 방법으로 시위를 조직했었다. 시위를 조직할때의 그 마음은 심장이 쿵쾅댔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때가 ‘그’ 시위를 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아참! 시위를 준비하면서 결의문도 작성했는데, 나는 이게 내일 빛을 발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2·28 12시 55분 이때 이대우를 포함한 나 그리고 6명이 학교 조회대에 올라 결의문을 낭독했다. 모래알만큼 많았던 눈동자가 조회대 앞에서 우릴 바라보고 있었는데 뭔가 짜릿했다. 우리의 말은 학생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우린 학생들을 이끌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이제 대구는 학생들의 함성, 그것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우린 사람들이 많은 곳만 돌아다녔는데 우릴 동조해주었다. 감격했다. 어른들도 우리의 편이었다. 고마웠다. 아직 시위에 합류 못했던 대구상고, 경대사대부고 학생들도 조금씩 시위에 합류하고, 경북여고, 대구여고를 포함한 4개의 고등학교들은 수성천변 유세장이라는 곳에서 원격으로 참여했다. 우리 동지들 중 약 220명 정도가 경찰에 끌려갔고 나는 그것을 비참하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이것을 절대, 절대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난 뒤 그때로부터 63년이 지난 2023년, 나는 창고에서 이 일기장을 찾았고 이때의 일을 통해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아직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