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선(심사위원장상)
선생님께 알게 된 2·28 운동
수원산의초등학교 6학년 김하늘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대부분은 위인이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에는 학생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국 역사의 특징이다. 1926년 광주학생의거, 1945년 신의주학생의거, 1960년 2·28민주운동과 4·19 혁명 등이 학생이 주도한 운동이다.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고 또한 많은 걸 아시고 계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만들어간 역사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된 3월 15일,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질문하셨다. 3·15 부정선거일이라고 대답하니 선생님께서는 맞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긴 말씀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는 그때 그 시절 대구공고의 학생회 간부였다고 한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가 많지 않고 가는 학생도 얼마 되지 않아 자부심이 매우 강하였다. 십 년 넘게 계속된 이승만 정권의 독재는 학생들에게 저항정신을 갖게 했다.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이를 매우 강조하셨다고 한다.
1960년 2월 28일 수성천변에서는 야당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정부에서는 대구 고등학생들이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그날 경북고, 경북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대구여고, 대구상고에 등교 지시를 내렸다. 일요등교 소식이 알려지자 학교별 학생들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부당함을 지적하고 학교에 일요등교 지시를 철수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생회에서는 이날 민주화운동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한 학교에서만 시위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다른 학교들과도 연합을 하기로 했다. 당시 전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끼리 몰래 만나야 했다. 2월 27일 오후에 모여 결의문을
작성했다.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이대우가 학교 조회단에 올라 전날 작성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결의문을 낭독하고 나자 학생들은 자유당 정권과 부정함을 외치며 일어났다.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학교 밖으로 나와 시위에 참여했다. 오후 1시가 넘어가자 8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대구는 곧 불의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숨겨주고 시위대에 박수치며 마음을 함께 해주었다. 많은 학생이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갇혔다. 선생님의 아버지도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주동자가 누구인지, 누가 시작했는지 진술을 강요받았다. 진술하지 않아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감옥은 지금의 감옥보다 시설이 안 좋은데다 그때 고문은 엄청 심했다고 한다. 이미 각오했기에 그런 심한 고문을 받아도 진술을 안 하고 버
텼다고 한다. 어쩌면 이건 부모님에 대한 불효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나라에 대한 충성일 수도 있다. 감옥 생활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생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다.
선생님은 아버지를 비롯한 당시 학생들의 시위가 3·15부정선거가 바로 전에 있었기 때문에 매우 정당한 운동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4·19운동이 일어나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2·28운동은 민주화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다. 2·28 민주운동은 단순히 일요일에 강제 등교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국민들의 삶이 무너진 시대적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절박한 인식과 3·15선거를 앞두고 자행된 야당 부통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내려진 일요일 등교라는 정권의 음모를 알고 있는 학생들의 분노로 일어난 것이었다. 열여덟살의 학생들의 누구보다 크고 뜨거운 열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의 시작을 열었다. 당시 학생들이 지켜낸
민주주의의 뿌리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잘 지켜내고 있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시위에 나가 자유당의 부정함을 외칠수 있었을까?
조금은 두려울 것이다. 2·28민주운동에 대해 들으면서 나도 불의를 보면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