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상(심사위원장상)
2·28운동,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다
경북공업고등학교 1학년 박준형
나는 ‘오늘날 우리의 학교생활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해 보고 싶다. 역사책에서 본 멀지 않은 과거의 학교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 매우 달랐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학교의 외관, 수업 방식, 선생님들의 태도, 학생들의 복장 등등 이러한 모습의 변화도 있지만 나는 학교 학생들의 본질적 사상 즉, 열정과 끈기 그리고 정치 참여도가 현대 학교생활보다 더욱더 활발했던 거 같다. 지금 내가 말하려 하는 2·28 학생 민주 의거가 대표적인 예이다.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경상북도 대구지역의 8개 고교 학생들이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이다. 때는 바야흐로 이승만 정권이 있던 시기, 이때 이승만 정권과 장면 정권이 대립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부통령 선거에서 강력한 후보였던 장면 박사가 지지율이 높았는데, 이에 대구 지역 학생들이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몰려가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승만 정부는 대구 시내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는데, 수법도 참으로 다양했다. 일요일 날 시험을 보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단체 영화 관람, 토끼 사냥 등을 핑계로 계속해서 등교를 강요하였다. 이에 우리 대구지역 학생들은 경북고, 경북여고, 대구고 등을 필두로 이승만 정부에 대해 체계적으로, 학생 중심으로 항거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총 8개의 학교에 총 1,200명 이상이 모여서 운동을 전개했고, 이 작은 한 걸음이 나중엔 4.19혁명이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도약으로 바뀌어졌다. 게다가 이 운동은 학생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8개의 학교 중심의 교사들과 공무원들 그리고 길거리의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숨겨주고 시위대에게 박수를 쳐주는 등 점점 학생 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또 중요한 이유는 2·28의 함성은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 등 모든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그 당시 학생들과 시민들의 생각이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것을 깨닫는다. 불합리한 절차와 정치적 판단을 거부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처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 것을 보며, 가만히 앉아 정부나 정치인들 얘기나 하고 행동과 직접적인 실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현대의 우리들과 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역사들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싶다. 과연 우리라면 저 시대에 저런 행동을 도모할 수 있었을까? 현재 우리는 정의와 공동선을 구분하여 시위할 수 있겠는가. 비록 나는 2000년대 사람이고 이 운동은 1960년대에 일어났지만 이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과거 학교 학생(선배)분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결실을 이루어 안전하고 살기 좋은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2·28학생 민주화운동! 저는 2·28 기념 중앙공원을 지날 때마다 무언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냄비근성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역사를 보고 다시는 불행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노력해주신 선조들을 보면서 이 대한민국, 특히 대구가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