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나와 함께 해 온 2·28
대구동신초등학교 5학년 김소율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열두 살인 지금까지 한 번도 대구를 벗어나 살아 본 적이 없는 대구 토박이다. 어릴 때부터 박물관, 기념관 등을 많이 다녔는데 유독 대구에는 2·28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곳이 많았다.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2·28 공원, 또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인 2·28 학생기념 도서관 등은 이름이 모두 2·28이다. 동성로에 가면 산책할 수 있는 멋진 공원이었고,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이라 자주 방문했지만 정작 2·28이라는 이름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항상 내 주변에 있던 2·28이라 이름의 민주화 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운동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가 이번 방학 때 대구민주시민교육센터에 다녀오면서 “민주주의” , “민주시민”이라는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호기심에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책을 찾아보기도 하다 보니 어느덧 2·28 민주화 운동과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2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고작 나보다 5살, 6살 많은 언니, 오빠들의 행동에 “어떻게 이런 행동을 했을까? 나는 이런 일을 상상할 수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주변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은 수능 시험을 위해 공부만 해야 하고 취미활동도 참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숨 막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60년 전 언니, 오빠들의 행동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게 느껴졌다.
특히 경북고, 대구고, 사대부고 등 익숙한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더 뭉클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 자유당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기 위해 교사들의 규제에도 시위를 위해 학교를 뛰쳐나간 언니, 오빠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학교 내 규칙도 중요하지만 더 크고 넓은 것을 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 내 자신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나는 학교 규칙이나 선생님 말씀을 절대 어겨서는 안되고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꼭 지키는 편이다. 가끔 불의를 보거나 어른들의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과 다르더라도 어른들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 줄 알았다. 예전에 엄마가 세월호 사건을 얘기해 주며 세상의 규칙이 중요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외부의 압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현명한 선택이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솔직히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어렵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2·28 주역들인 언니, 오빠들의 결단과 행동을 보면 이제는 조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1960년 2월 28일 일어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 된 2·28 학생의거는 고등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대구에서 시작한 운동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한 한 알의 불꽃이 되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라는 그날의 외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학생들의 함성과 희생이 오늘날 내가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만든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지금 사는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대한민국 국민들이 직접 선거에 참여하고,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이며, 대통령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들이나 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우리 아파트만 보더라도 “놀이터 노후 정비를 위한 비용 사용 건”에 대한 부분이나 어떤 논쟁 부분이 있을 때마다 엘리베이터나 게시판에 공지하고 아파트 모든 주민들의 찬반 투표로 이루어지며 과반수 이상의 표가 나와야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60년 전의 대한민국 그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 같은...
내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시절 쉽지 않은 용기를 내 준 언니, 오빠들의 희생에 경건한 마음을 바치며, 대구 시민으로 태어나고 대구 시민이어서 뿌듯한 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