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2·28
대구명덕초등학교 5학년 배서윤
2·28 민주화 운동 아마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2·28민주화 운동은 학생들이 만든 운동이다. 내가 그 당시에 학생들 중 한 명이였다면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겠지만 자신들이 자신의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거 같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숨기지 않고 맞서 싸운 학생들이 대단하다.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같이 시위하지 않고 학생들을 외면한 점이 화가 나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아마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 우리가 목숨을 잃어 지금은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던 당시, 자신들의 목숨까지 받치면서 시위 한 게 대단하다. 지금으로 따지면 학생들은 전쟁과 같은 시기였을 것 같다. 지금은 유행을 따라가고, 서로 싸우고 비난하느라 정신없는데 이 일조차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게 누군가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현재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28민주화 운동은 누군가에게 승리,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복잡했을 거 같다. 있던 시간, 장소는 같았겠지만 사람마다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에는 죽음의 위협, 누군가에게는 잃음, 누군가는 승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결과는 같았다.

그건 바로 학생들의 승리.
하나의 횃불이 켜지고 다른 횃불에 빛을 주어 점점 빛을 내며 횃불이 점점 커지고 불빛이 커지며, 모두에게 빛을 주고, 밝게 빛나게 되었다. 1960년, 학생들의 횃불이 켜지던 2월 28일 꽃처럼 웅크리고 있던 꽃을 피운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가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을 때, 어른들은 알고 있었을까? 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피해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시위운동을 하려 했다는 것.

2·28민주운동은 5.18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6.10민주항쟁의 첫걸음이 되었다. 어리고 어렸던 어린 고등학생들, 학생들만의 희생을 볼 수만은 없어 대학생, 교수들까지 2·28민주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기자들도 사진을 찍으며 학생들의 외침을 적기 시작했다. 한편, 100미터에 이르는 시위 행렬이 경상북도 도청에까지 진입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정당하다!”
“정의는 살아있다!”
“일요일 등교의 폐습을 시정해라!”

이어서 이대우 부위원장이 뛰어올라 결의문을 낭독하기 시작한다.
“백만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이 목숨이 다할 때 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이러한 행위는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우리의 이승만 박사님을 부정하는 놈들이다!”
경찰관들은 곤봉을 마구 휘두르고 구둣발로 학생들을 짓밟았고, 마구잡이로 학생들을 연행했다. 한편, 경북고 학생들은 “학생 데모의 자유를 달라!” “학원의 자유를 보장하라!” “자유를 달라!” “도지사 나오시오! 우리들의 요구를 들으시오!”
화가 난 한 학생이 도지사의 손가락을 깨무는 바람에 도지사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이 후 경찰들이 출동해 무력을 사용해 선두에 선 학생들을 체포했으며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위와 같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승리하였다.
나는 이런 우리나라가 대단하고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