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2·28 운동 참여자 “김영수”
경북공업고등학교 2학년 김영수
반갑습니까? 저는 2·28운동에 참여한 김영수입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네요. 1960년 때면 귀중한 쉬는 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일탈인 일요일에 학교를 오라고 하여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선거유세를 보러가기 위해 정말 기대하였으나 학교에 오라는 말을 듣고 나 김영수 밀실사건도 해결해 버리는 명탐정 바로 저 김영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뜩 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곧바로 이 일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조사하였습니다. 근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꼼수를 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사실을 깨닫고 저의 리더십과 총명한 머리를 이용하여 시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공고 학생부위원장 김영수는 자신이 적은 지필 결의문을 힘차게 낭독하였습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한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저의 결의문을 들은 학생들은 오열하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가지 않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구나.” 초특급 화재였습니다. 교사들의 만류에도 학생들은 학교를 뛰쳐나와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횃불을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운동 도중 경찰에게 구타당하며 쫓기던 저를 숨겨주신 용감한 시민 ‘곽철용’아저씨 아직도 감사하고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위대에 박수치며 동조해주시던 다른 시민분들에게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꼭 부정부패 무능함 등으로 무너져 내린 국민들의 삶을 내가 바로잡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목청이 터지나 살이 찢겨나가나 눈앞이 흐러져도 시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죽으면 우리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며 머리는 “힘들다” , “쉬고 싶다”를 반복하며 생각했지만 몸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정의로운 바보란 것일까요?” 제가 죽어나가도 이렇게 운동하고 시위하는 게 학생인 저에게 맞는 선택이었을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의 생각을 말해드리면 일단 저는 살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위하다가 죽었어도 저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가 기억하여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저는 살아가고 있고 일도 어찌저찌 끝났지요. 나는 영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