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대상
돌멩이의 이야기
대구세현초등학교 6학년 이세은
안녕. 난 어느 공원에 살고 있는 돌멩이야. 내가 있는 공원을 소개해줄게. 공원에는 분수가 있고 나무들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공연장도 있어서 사람들이 가끔 와서 공연을 하기도 해. 여느 평범한 공원과 다르지 않지. 하지만 이 공원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의 일이야. 그때 이곳은 공원이 아니고 초등학교였어. 나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야.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난 언제부턴가 커다란 바위에서 갓 떨어져 나온 돌멩이였고, 떨어져 나온지 얼마 안되서 모난곳이 많았지. 그리고 한 고등학교의 운동장 옆에서 굴러다니고 있었지.이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굴러다니며 즐겁게 지냈어. 아이들은 내 머리를 까끌까끌한 모래바닥에 긁으며 놀기도 했어. 또 나를 흙이 많이 묻은 고무신 위에 올려놓고 커다란 돌에 부딪히게 해서 내 몸이 부러질 뻔한 적도 있었어. 아찔한 경험이었지. 어쨌거나 즐거운 나날들이었어.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때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28일 일요일이었어. 한 고등학생이 이 운동장으로 오는 거야. 추워서 그런지 볼이 빨겠어. 고등학생이 일요일에 왜 나오나 싶어 유심히 지켜보았어. 그런데 그 고등학생처럼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하나 둘씩 오기 시작하는거야. 그들의 표정은 비장했어. 모두의 얼굴에는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어. 나를 비롯한 친구 돌멩이들도 그들을 숨죽이며 지켜보았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키 큰 한 남학생이 조회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어.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뒤, 학생들은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어. “이승만 정부는 물러가라!” , “독재정권 물러가라!” 그날, 고등학교 운동장은 소년들의 함성으로 가득찼어. 드디어 민주주의에 한 걸음을 내딛는 때가 온거야.
그런데 무서운 일이 일어났어. 교문밖으로 나가려는 학생들이 그것을 막으려는 경찰들과 충돌이 생겨난 거야. 경찰들은 무시무시했어. 몽둥이를 들고 학생들을 막 때리는 것이었어. 학생들 중에는 그 몽둥이에 맞아 쓰러지는 경우까지 있었어. 참혹한 그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어서 너무 슬펐어.

나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어.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 누군가 나를 확 낚아채어가는 촉감이 느껴졌지. 그러고는 팔을 휘둘러 나를 던지려고 하는거야. 그때의 공포는 말로 할 수 없었어. 나를 이용해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거든. 그런데 나를 던지려던 손이 멈췄어. 나는 실눈을 뜨고 그 손의 주인을 보았지. 그 손의 주인은 앳된 얼굴을 한 남자 고등학생이었어. 아마 경찰을 맞추려고 나를 던지려던 건가봐. 그 학생은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제발 나를 던지지 말아줘’ 나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어. 다행히 나를 던지지는 않았지.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었어. 교문을 지나 작은 가게들을 지나 거리로 향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지. 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웠어. 나를 쥔 그 손도 파르르 떨렸지. 아마 그 학생도 나만큼 무서웠던 것 같아. “독재정권 물러가라!” 또 함성 소리가 들려왔어. 우리 둘은 그 소리에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렸지. 학생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거리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어. 그렇게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됐어. 약 2시간 정도 지난 후에 학생들은 해산 했어.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학생들이 다치는 것을 많이 보았어. 그리고 경찰에 끌려가는 학생들도 있었어. 나를 던지려고 했던 그 학생도 얼굴에 멍이 들고 목이 다 쉬었지.

그 학생은 집으로 가려는지 터덜터덜 걷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나를 쳐다보았어. 그리고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무언가를 내 얼굴에다가 적는 것이었어. 그러고는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 나를 휙 던졌어. 그러면서 “민주주의여, 빛나라!”라고 외치는거야.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지. 나한테 적은 그 글씨가 지금 이 학생이 말한 외침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저녁노을이 져서 알알이 반짝이는 운동장 모래에 툭, 하며 던져졌지.

그때부터 나는 여기서 생활하게 되었고 돌자, 돌식이와 친해져 행복하게 지냈지. 그리고 그 학생들의 바람대로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날이 왔지. 물론 그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울퉁불퉁 했던 내 모습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반질반질한 돌멩이가 되었어. 그리고 행복한 일이 생겼어. 내가 사는 곳이 2·28기념공원이 된 것이야. 내가 살고 있는 공원이 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이제 알겠지? 공원이 많은 공사를 거치면서도 나는 용케 이 자리에 남게 되었어.

해마다 이곳에서 그때 그 학생들의 정신을 기억하는 2·28기념식을 열어.
나는 그 기념식을 볼 때마다 아직도 희미하게 내 얼굴에 남아있는 그 글씨를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