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감응하는 2·28정신: 낡은 플래카드에서 혁신적 생활이념으로의 전환
새론중학교 1학년 송진우
독서를 특히 역사 읽기를 세상의 모든 가치 중에 으뜸으로 강조하셨던 부모님 덕분에,저는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조선왕조실록을 몇 번 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이 망해갈 때 진정한 선비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망국의 슬픔과 부끄러움은 오직 힘없고 무지했던 일반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일제 강점기, 이 부당한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고자 했던 시대의 영웅들도, 사분오열 하여 일제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시작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우리 헌법 전문이 말하고 있듯이,오늘의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와 4.19 민주이념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4.19혁명의 도화선은 당대의 혁신을 대표하는 불멸의 대구에서 불타올랐다는 사실을 역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날 밤과 새벽 사이 냉돌방 결의를 위해 모였던 가난한 학생들은 두려움을 극복해 내고 대의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부당하고 의롭지 못한 것에 저항하는 것은 선비들이 하는 행동이며,저는 냉돌방 결의는 현대판 학생선비들의 탄생이라고 이해했습니다.1960년 대한민국은 이처럼 위대한 학생들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제가 대구로 전학와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느낀 불편함은 사투리나 더위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주변 친구들 중에 2·28민주운동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선생님조차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서울에서 바라 본 대구는 대통령을 여러 명 배출한 고장이지만 대구에서 만난 친구들의 자존감은 낮은 것 처럼 보였습니다.학교생활과 제 삶 전체에서 정의롭지 못한 악습과 제도에 저항하는 것이,세상을 진보시키고
모두를 위해 이익이 된다는 생각은 여러 군데에서 충돌하기도 했습니다.저는 2·28정신을 포함하는 민주저항의식은 교과서나 전광판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기회가 될 때마다 ‘냉돌방결의’의 고독했고 가난했던 학생 선비들을 떠올리며 올바름을 따져 물었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저는 대구에서도 다앙한 사람들이 선출직 공무원에 당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광주에서도 마찬가지이며,오직 민주적 대의와 공익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주권자를 대표했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최종단계에서는 항상 대한민국 전체의 안녕과 평화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제가 살고 있는 대구가 1960년의 대구처럼 깨어있고 자각하는 민주시민의식의 ‘처음’으로 남아 주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민주의식과 우리생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므로 공장식 축산은 생명경시풍조를 불러오므로 저는 치맥축제를 반대합니다.다양한 문화융성의 르네상스 도시 ‘대구’를 위해서 ‘파워풀대구’ 보다는 계속 ‘컬러풀대구’ 였으면 좋겠습니다.
3년 간의 대구유학을 통해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쌓았습니다. 제가 초등 고학년과 사춘기를 보낸 대구는 여름 팔공산과 비슬산의 숨막히는 녹음 때문에 더 즐거웠습니다.푸른 동해가 경포대 보다 가까워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2·28이라는 대한민국을 바꾼 사건과 감응해서 대구는 영원한 별처럼 저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저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인데, 아마도 2·28독서토론회나 2·28축구회를 방학에 맞추어 조직해 본다면 여름 대구는 더 한층 뜨거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