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2·28 정신을 향한 숭모
다사중학교 3학년 변주희
수십년전 어느날, 백만학도의 붉은피가 끓어 그 열정이 독재에 저항한 날, 그날은 한창 한기가 맴도는 어느 2월달 겨울이었다.

독재가 창궐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그 시대에 어린 학도들의 마음속을 지폈던 것은 무엇인가. 탄압과 억압에 억눌린 그 시대 민중을 대변한 자가 바로 그 어린 학도들이었으니, 무엇이 옭고 그른지 알고 그것에 분노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 나이다운 정의를 지녔으나 분노에 그치지 않고 아직 맑은 목소리로 부당함을 외쳤다는 점에서 또한 용기있었다.

어둑한 저녁 내일 있을 시위에 대한 결의를 다지던 굳건한 목소리를 들은 것은 하늘에서 지켜보던 달뿐이었다. 그들의 몸을 격렬한 저항에 대던질 준비를 하면서 천당에서 보자는 약속을 할 때 그 떨리는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침에 학교에 가기 싫어 게으름을 피울 때, 몇십년전의 대의를 도모하던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책임감이란 가방을 메고 자유를 위한 갈망이란 신발을 신었다.

그러니 그들이 아침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학교로 발을 내딛을 때 그들을 나아가게 한 것은 불의를 향한 저항이오, 두 눈으로 본 자유당의 무능이었다. 정의를 타고 흐르는 피가 기어코 어린 학도들의 목소리를 키웠고 그 검은 떼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을 상상하길, 하늘을 뒤덮은 울분에 찬 목소리와 이때까지의 억눌린 외침은 터져나와 부정부패에 눈감은 사람들의 귀를 간질이고 나아가려 하던 이들에겐 등을 떠밀어주는 바람이 되었으니, 그들의 피로 적신 대한민국 위에서 나는 살이 에일듯한 바람에도 그러한 기분을 느낀적이 없던 것이다.

그 때 백만학도들이 타고르의 시를 잊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토머스 제퍼슨의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때로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라는 말을 기억한다. 나는 누군가가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에 애도를 바친다. 그들의 어린 피를 머금은 한반도에 어떻게 자유라는 꽃이 피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앙한다.

자유를 연모하던 고등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가던 그 열정은 작은 신호탄이 되었으며 그것이
터질 때, 누군가는 일어섰고 동조했다. 작게 타오르던 불꽃이 누구의 가슴속에 씨앗을 뿌렸는가. 그것은 또 다른 고등학생들이었으며 크게는 4.19 혁명을 꽃피웠다. 허나 그 열매를 맛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지금 풍족한 세상에서 자유를 당연시하고 그 소중함을 모르는 우리라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다.

지금 나는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똑같이 행동할수 있는 사람인가 혹은 도로로 질주하는 13인의 아해 중 하나인가. 누가 그리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면, 고개를 들어 그가 어디에 서 있는지 봐라. 아닐 수 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날 흑색의 시위의 백색의 정의를 맛보는 사람이지,
2·28 운동때 고등학생들의 뜨거운 불길의 열기를 느껴본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현대에 사람들이 그러하다. 우리는 지금의 바쁜 생활에 정신이 없어서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아니면 내가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비춰본다고 해서 이익이 없을 거라는 계산적인 사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작은 불꽃을, 또 다른 불의가 일어나면 불타오를 수 있는 작은 촛불을 품어두자. 부정에 분노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정신을 한자락 숨겨두자. 평화의 들에서 봄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를, 잘못된 것을 옳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고가 정신의 주축이 되고 두려움을 이겨 독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던 학도들에게 존경을 표하자.

다시 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도 마음속에 있던 꺼질듯한 촛불에 손수 불을 붙여준다. 나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주저말고 곧게 서서 부르짖을 수 있도록 동방의 밝은 빛에 대고 바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