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전국공모 우수작-입상(심사위원장상)
민주화운동의 불꽃 2·28 민주운동
다사중학교 3학년 황윤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 국가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를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지기까지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중 내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알게 된 2·28혁명이 있다.

2·28혁명은 이승만 정권이 곧 치러질 선거에서 대통령에는 이승만을, 부통령에는 이기붕을 당선시키려 했다.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의 당선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2월 28일 대구 수성변에서 상대 후보인 장면의 유세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세장에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특히 대구는 장면의 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이기에 이승만 정권은 이를 막기 위해 부당한 지시를 하게 된다. 이승만 정권은 시민들이 유세를 보러 갈 수 없도록 학생들의 시험 일정을 2월 28일로 바꾸는가 하면, 영화관람이나 토끼사냥 임시수업 등을 핑계로 일요일인 유세일에 학교로 등교하도록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승만 정권의 의도를 알아채고 부당 시위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탄압할수록 학생들의 반항은 더 심해졌다. 그러자 2.27 오후 경북고 이대우 학생부의원장의 집에 여러 학교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기로 하고 상호 연락망을 구축하고 결의문을 작성했다.

2·28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위원장 이대우 등이 학교 조화단에 올라 전날 작성한 경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 낭독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학생들은 자유당 정권의 불의와 부정을 비판하며 일어났고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횃불이 타오른 것이다.

학생들의 용기가 만들어낸 2·28 민주운동은 3.15 부정선거 전후의 민주운동과 항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2·28 민주운동이 알려지자 마산의 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이 사건이 3.15 의거이다. 이 3.15의거가 마산 시민들의 분노로 결국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28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자, 다른 민주운동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5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는 2·28 민주운동 행사 등 역사적 학술자료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의를 위해 나섰던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낸 민주화의 시작, 결의문에 나왔었던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라는 이야기를 꼭 기억하고 늘 2·2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