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횃불을 밝혀라, 대구여!
경동초등학교 5학년 최현아
2·28 민주운동은 1960년 이승만 대통령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2·28 민주운동은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그런데 왜 서울이나 부산, 광주가 아닌 대구에서 2·28 민주운동이 일어났을까?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나는 갑자기 아빠와 가보았던 이상화 시인의 생가가 떠올랐다. 이상화 시인은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일본에 저항하는 시를 썼다. 이상화 시인의 형인 이상정 역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여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구해주는 등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07년에 있었던 국채보상운동도 생각이 났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빚을 우리의 힘으로 갚자는 운동으로 대구의 서상돈이라는 분께서 처음 시작하였다. 이 운동으로 인해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여자들은 그 당시 중요하게 여기던 비녀와 반지들을 기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분이 낮은 사람들까지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0만원이라는 빚을 일본으로부터 갚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런 일들을 보며 나는 그만큼 우리 대구가 정의롭고 나라를 사랑하는 곳이라고 느꼈다. 바로 그렇기에 1960년 2·28 민주운동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또 2·28 민주운동 글짓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작은외할아버지가 4·19혁명 유공자이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외할아버지는 서울대학교 2학년이던 1960년 4·19에 참여하셨는데, 그때 총에 맞은 옆 사람을 도와 서울역 주변에 있는 병원에까지 가서 그분의 목숨을 살리셨다고 한다. 그 공으로 할아버지는 현재 국립 4·19 민주묘지에 묻혀 계시다.
나는 대구의 그런 용감한 태도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습을 본받아야 되겠다고 느꼈다. 또 그 당시 용기를 내 참여해 준 언니 오빠들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없었는데 용기를 내어 참여해준 언니 오빠들에게 감사했다. 또한 나는 4·19 혁명에 참여하여 훌륭한 공적을 세운 작은외할아버지의 자손인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2·28 글짓기로 인해 많은 것을 알고 생각하게 되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