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2·28 사건속의 메아리
대구 다사중학교 3학년 김지유
현대의 대한민국 헌법 제1장 1조에 나오는 내용 중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가 있다. 현대에는 이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이 지켜지기까지는 우리 윗세대의 노력이 빚어내어 만들어진 것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최초의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은 1960년 2·28 사건부터 시작한다.
1960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정치 깡패가 판을 친 세상이었다. 자유당의 부정부패가 난무한 것은 물론 , 독재 정치 그리고 장기집권 등이 이어졌다.
이승만 정권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의 정권을 유지하려 정당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이 전에도 사상을 강요하고 학교에서 정치토론과 사상토론을 하는 수업을 막고 학교를 정치도구로 쓰는 등 여러 일이 많았지만, 학생들을 분노케 하고 목숨을 뒤로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토요일은 자유당의 연설이 있는 날이라 대구 각급 학교에 단축 수업을 실시하여 연설을 듣게 한 반면, 일요일은 야당인 민주당의 연설이 있었는데 야당의 연설을 듣지 못하게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런 등교 지시는 자유당의 속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기껏 등교한 학생들이 일요일에 학교에 가도 정작 하는 일은 토끼를 잡는 것이었다. 이에 참다 못해 분노한 대구 학생들을 움직이게 한 큰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뛰쳐나온 것이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치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옹호하라!’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와 같은 문구를 내세우며 학생들이 앞장서서 시위를 하였다
정말 많은 고교 학생들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여 길거리는 학생들의 정의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러한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학생들은 체포가 되었고,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여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2·28 학생 시위 소식은 많은 언론사들이 보도를 하였고 소식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3·15 마산에서, 그리고 4·18 서울에서. 이렇게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었고 마침내 결실을 이루듯,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7에 사퇴서를 제출하고 하야 하였다. 이 일을 통해 우리 민족은 부정부패로 인한 민족 내에서의 분열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이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2·28 대구 학생 시위는 최초의 민주화 운동인 4·19혁명과 이어진다. 이런 감격스러운 날인만큼 기념공원도 세우고 국가기념일로도 지정하였다.
역사는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배우는 이유는 또한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고위층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형태는 시민들이 이루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대구 학생들이 저항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일어서서 연필을 잠시 내려놓고 목숨을 내놓고 시위에 뛰쳐나왔다는 것이 나에겐 크게 다가왔다. 지금의 나도 학생인데 목숨까지 내놓고 시위에 참가할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는다. 그 당시의 학생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할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공부를 해서 지식을 기르고 이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당장 지금의 현실을 바라봐도 와닿는데 과거엔 어떤 큰 용기를 품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번 계기로 통해 2·28 대구 민주화 운동에 대해 깊고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희망찬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민주주의 사회속에서 행복하고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