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대구상원고등학교 3학년 신정원
1960년 2월 27일

내일이다. 우리의 의지와 결의로 가득 찬 이 목소리를 내게 될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이것은 일종의 혁명이고, 운동이며, 과거 우리 국토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태극기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청년들의 발악이다. 어른들은 우리가 그저 책상에 앉아 조그마한 촛불 하나 밝힌 채 책장을 넘기길 바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들이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고 그것의 부당함엔 모르쇠를 짓는 것에 일말의 기대도 저버린 상태이다. 나는 어쩐지 답답해져 한숨을 멈출 수 없었다. 당장 어제까지도 학생 간부들과 함께 선생님들 앞에서 일요 등교의 부당함을 몇 번이고 언급하고 반복하여 울분을 토해냈지만 끝내 돌아오는 말은 ‘일요일 등교는 변하지 않는다.’ 따위의 것이다. 그러고선 자리를 피하며 헛기침을 흠흠 내뱉는 그 뒷모습에 우리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야 말았다. 선생님들은,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학생이 무어를 아느냐며, 애먼 짓 했다가 이름에 줄 그이고 싶냐며 두어 마디 던지고 혀를 찼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묻는다.

우리는 모두 지금 사회에, 우리의 정부에, 우리의 나라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답답한 독재에, 이승만의 불의와 부정에 우리는 신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4년 전에도, 3년 전에도 우리의 대학생들과 동지들이 시위에 뛰쳐나가고 동맹 휴학을 하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권력인들은 침묵하고 어른들은 한숨만 푹푹 내쉬는 통에 우리들은 길 잃은 똥개마냥 땅바닥만 쳐다보며 앉아있어야 합니까.
끝내 우리의 학원에까지 그들은 입김을 불었고, 그 더러운 속셈을 모르는 이는 우리들 중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같은 감정을 느꼈고 우리가 배운 대로 목소리를 내어야만 한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어져온 민족의 목소리를 이어내야만 한다.

나의 소중한 학우, 김민철은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라고. 그 한마디에 내재된 걱정과 근심, 두려움은 역시 내게도 있었기에 피가 덜덜 끓는 기분이었으나, 나는 굳게 대답했다. 괜찮을 것이라고. 우리의 이유 있는 목소리는 다른 우리의 동지들과, 이웃들과, 끝내 나라의 민족 모두가 내게 될 목소리라고. 나의 말에 민철이도,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두려움보다도 분노와 투지가 앞서 모두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이 썩어빠진 정치와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긴 투쟁의 계기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우리는 거세게 불씨를 키워낸다. 키워낸 불씨로 학생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이승만 정권을 전부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부정선거 배격하라. 한마디 조용히 읊조릴 때마다 심장에 꽉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 고요한 아우성이 계속해서 내 의지를 불태웠다.
그동안 경찰과 군의 시위 대처 방법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많이 다치고, 어른들이 걱정하듯 진학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기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앞으로 나선다.
우리의 뒤를 따를 무수한 행렬의 시민들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긴 울부짖음 끝에 찾아온 민주주의를, 우리의 자유를 양껏 누리며 이 고귀한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해가 밝아온다. 진작에 입고 있던 검은 교복이 갑갑하다. 몇 시간 뒤면 나는 행렬 가운데에서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자유를 외칠 것이다. 토끼 사냥을 나간다는 선생님의 말은 그저 우습게 넘기고, 이 마음가짐 그대로 가지고 간다. 이것은, 훗날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 속에 살고 있는 내가 과거가 된 지금의 내게 너는 옳았다고 말해줄 증거물이며, 내 요란한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이완제이고, 발악에 가까운 기록이다. 부디 이것이 아무개의 부질없는 몸부림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