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2·28 민주운동을 기억하며
대구명덕초등학교 6학년 정현지
어렸을 땐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2·28 민주운동 기념관을 관람하거나, 도서관에 자주 가기도 했는데 요즘은 왠지 바빠지기도 했고 코로나19 때문에 2·28 민주 운동 기념관을 자주 못 가게 되어 2·28 민주운동이 점점 기억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글짓기 대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2·28 민주운동에 대해 기억해 보려고 한다.
1학년 때 2·28 민주운동 기념관을 부모님, 동생과 함께 처음 가보았다. 그 땐, 2·28 민주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마냥 기분 좋게 기념관에 갔는데, 1층에 있는 전시실엔 동상도 있었고, 소리까지 들려 나에겐 더없이 무서웠다.
그렇게 2·28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뛰쳐나온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함성소리와 총소리가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았다. 사실은 그 후로도 저학년 땐 2·28 민주운동에 대해 수업을 받아도 이해가 잘 안되고, 단어 하나하나가 어렵게만 느껴졌고, 2·28 민주운동이 그저 멀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4학년 때 처음 2·28에 대해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땐 학원에서 선생님이 2·28민주운동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재미있게 수업을 해주셨고 나는 그 수업을 엄청 흥미롭게 들었다. 저학년 때는 ‘이게 무슨 말이지?’, ‘지루해’ 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는데, 그 후로부턴 2·28 민주운동이 더 이상 무섭거나 지루해지지 않고, 자랑스러운 우리 대구의 역사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내가 전에는 2·28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전 한 번 더 2·28 민주운동에 대해 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2·28 민주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난 불행해 졌을까?’ 라든지, ‘정말로 800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을까?’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예전에는 ‘그 당시에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무섭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당연히, 당연히 그 학생들은 경찰들이 무섭고, 또 총이 무섭고, 그리고 죽음이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가짐과 용기가 그 두려움들을 집어 삼켰을 것이다. 난 항상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불쌍해서 동정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시민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냈던 학생들이 멋지고, 자랑스럽게만 느껴진다.
사실은,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민주주의가 뭐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알려 할수록 궁금해지기만 하는, 마성의 단어 같았다. 그냥 단순히 ‘공평’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확히 알고 싶었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뭐 길래, 학생들과 시민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지키려 했을까? 나 혼자 낑낑거리기만 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테니, 급한 대로 엄마께 물어보았다. 엄마께서도 좀 고민하는가 싶으시더니 “한사람이나 소수의 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하고 명령하는 게 아닌, 모든 사람들이 두루두루 고민해서 행동하는 게 민주주의 아닐까?” 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을 국민이 가지고 국민의 힘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하는 제도.’ 라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 민주주의가 정말 중요한 단어라고 느껴졌다.
이 글을 쓰면서 2·28 민주운동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하고, 깊게 생각해 봐서 기뻤고 무엇보다 그 당시 민주운동에 참가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 드리고 싶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깨닫고, 실천할 때까지 나도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