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정의의 횃불이 쏘아 올린 민주주의의 불길
대원국제중학교 3학년 조서희
2021년 2월 28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까지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나간 집도 있을 것이고,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알까…. 정확히 61년 전 오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선생님이나 부모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나 때는 토요일에도 등교했어 인마, 너네는 주말에 학교 안 나오잖니? 얼마나 좋아” 21세기의 학생들에게 주말 등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뿐더러 어처구니가 없는 지시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등교를 요구했던 것일까?
1960년대 우리나라는 이승만의 독재정권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등 비민주적인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지위를 어떻게 해서든지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승만은, 선거에까지 개입하여 자유당의 집권을 확정 지으려 하였다.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의 급서 이후 부통령 자리에 이기붕을 앉히기 위해 이승만은 자유당 유세장에는 집마다 1명 이상 참가하고 민주당 유세 날에는 각종 행사를 유세가 끝날 때까지 가지게 하며, 학생들의 경우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유세장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에 의지했던 한국 경제가 점점 사회적 불평등의 극에 치닫고 실업률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보이던 이 시기에 국민들 사이에는 이미 사회적 적대감이 형성된 지 오래였다. 더 나아가 문맹률 감소와 교육의 확대는 시민들의 비판 의식을 고조시키고 부정부패에 맞서는 의지를 강화해 반이승만 정부가 생길 정도였다.
여기에 학생들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니 갑자기 일요일에 불러놓고 시험을 당겨서 그렇다는 둥 정 그러면 영화나 보자는 둥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는 학교장 측에 분노를 느낀 고등학생들은 겁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마음 한구석에 불타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결의문을 작성부터 집합까지, 이 모든 과정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자신들의 마땅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궐기를 결심한 학생들이었다. 그렇게 대구의 8개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된 2·28 대구 학생 의거는 이후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으로 확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쏟아 올린 정의의 횃불은 훗날 대한민국의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의 발판을 마련하며 민주주의의 불길을 더욱더 활활 타오르게 했다.
2·28 운동의 시작은 고등학생들이었다. 한낱 고등학생이, 미성년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2·28 민주화 운동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순히 일요일 등교가 싫어서가 아닌, 부당한 정부의 요구에 당당히 맞서 싸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 이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시민의식에 불러일으킨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대구 학생들의 의거는 시민 전체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부당함에 맞서고 싶은 의지를 뜨겁게 불타오르게 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도 이들의 용기 없이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28 민주화 운동을, 그리고 무능한 정부에 대응한 학생들의 정의로움을.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는 이들이 목 터 저라 외친 함성의 메아리이기에 역사 속 이날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