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날씨: 맑음
“그 촛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우리 경북고등학교 학생부위원장 이대우가 학교 조회단에 올라 결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 낭독은 격앙된 우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오늘은 일요일. 내일의 삶을 위해, 힘겨웠던 일주일을 정리하는 신성한 휴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루의 휴일마저 빼앗긴 채 여기 학교운동장에 모였다. 3월 3일 치르게 되어 있는 학기말 시험을 오늘 2월28일 일요일에 치른다는 것이다. 대구고교는 토끼사냥을 한다고, 대구상고는 졸업생 송별회를, 경북대 사대부고는 임시수업을 하기로 했다며 학생들을 학교에 모이게 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속해있는 현 자유당 정부와 학교는 우리 학생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안다. 오늘, 민주당의 유력한 부통령 후보인 ‘장면’의 선거유세가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다는 것을. 그를 향한 대구시민의 지지가 열렬한 것을. 이승만 정부는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장면 후보의 유세현장에 우리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들의 목소리를 빼앗으려고 우리들을 학교로 가두어 놓으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후 1시. 우리들은 경북고 교문을 나와, 대구 중심부인 반월당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우리들은 서로의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자유당 타도!” “민주주의를 돌려달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 작은 외침의 계란으로 거대한 큰바위 이승만정권을 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그들에게 순종하는 어린 양이 되고 싶지 않다.
그 옛날 일본에게서 우리의 주권을 찾은 조상들의 뜨거운 피가 나에게도 흐르고 있다. 자유당에게 주권을 뺏긴 지금이 그 옛날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나는 역사의 한 중간에 서 있다. 독재정치와 싸워서 민주주의를 찾고 싶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내가 바라는 민주주의국가는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국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아닌, 국민들을 향한 설명과 이해. 배려로 서로를 존중하고, 토론하는 정의가 살아있는 국가. 그야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주위를 둘러보니, 몽둥이로 맞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또한, 거리의 시민들이 우리 친구를 구출하여 숨겨주고 우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의 시위는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하루종일 목이 터져라 정의를 외치며 시위를 하느라 몸이 많이 지치고 힘이 들었다. 내 친구를 포함하여 120여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어 끌려갔는데, 그들의 안부도 걱정되고 슬프다.
뉴스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굳은 의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전국에 민주주의를 향한 불을 지피고 있다고, 대전, 마산, 광주에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고 연신 보도한다. 우리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우리가 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의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대한민국의 우리 후손들아!
지금 너희가 있는 그곳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지금의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기에 많이 두렵고, 떨리고, 무섭다. 그러나, 역사적인 순간에 내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국민이 존중받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기를 뜨겁게 열망한다. 우리가 꼭! 이 땅에 올바른 민주주의국가를 위해 열심히 싸울 것이다. 우리들을 기억하며, 고귀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고 망설임 없이 나서서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