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 28일 일요일 오후 1시경 대구 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이 대구 중심부인 반월당을 거쳐 경북도청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유당의 무능한 정권 비판과 일요일 등교 지시를 반대하며 시위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현장에 나가있는 취재 기자와 연결해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이지수 기자 나와 주세요
네, 저는 지금 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인 반월당에 나와 있습니다. 자유당은 선거에 질 것을 우려하여 학생들이 거리 유세에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구실을 만들어 일요일에도 학교에 등교 지시를 내렸습니다.
학생들은 부당한 지시에 분노하며 결의문을 읽고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 “학원 내에 미치는 정치세력 배제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학교 밖으로 나와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천당에서 만나자”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 학생대표들의 모습과 학생들이 다칠까봐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애타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연한 의지를 다진 학생들은 한꺼번에 거리로 뛰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시위에 바로 합류할 수 없었던 경대사대부고와 대구상고 등의 학생들은 교내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거나 학교 담을 넘어 시위대에 합류했으며 수성천변 유세장으로 간 경북여고와 대구여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등의 학생들도 시민들과 합세해 저녁 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장은 지금 불의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의 함성 소리로 가득합니다.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어깨동무를 한 채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떨리는 마음과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학교를 나섰을 학생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부디 아무도 다치지 않고 시위가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경찰에 잡혀가기도 하면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바닥에 나뒹구는 흙 묻은 교복 단추들은 주인을 잃었고 찢어진 먼지투성이 교복을 입은 채로 끌려가며 매를 맞는 학생들도 보입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시민들은 경찰에 쫓기는 학생들을 집안에 숨겨주고 구타당해서 다친 학생들을 도와주며 시위대에 환호하고 협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민들까지 합세한 시위는 저녁 늦게까지 계속 되는 중이고 시위현장에서 약 220여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됐고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각 학교의 교사들도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어린 나이에도 부정부패에 맞서서 비폭력 민주화를 외친 고등학생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독재정권의 압박과 공포에 어른들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데 많이 미안하다”라고 했고 시위에 참가한 한 고등학생은 “누군가의 아들, 딸, 언니, 오빠, 형, 누나이면서 정의를 위해 용감했던 학생들을 기억해 달라. 우린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후배들에게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겨우 18살인데 교문을 나서면서 학생들도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가족들 걱정도 되고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갈등을 하면서도 한마음 한뜻으로 부정한 행위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앞장선 학생들은 시대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시위는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실패로 끝났습니다. 잔인한 폭력 앞에 무릎 꿇을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의 순진한 얼굴을 보면서 겁많은 나였다면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하는 부끄러움이 듭니다. 오늘 학생들이 피운 작은 불씨는 커다란 횃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폭력은 어떠한 이유든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행동으로 실천해준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밝은 희망입니다.
오늘은 먼 훗날 우리 역사에 남아 기록될 것이며 민주학생 운동의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학생 민주운동의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구 시민으로서 독재 정권에 맞선 대구시내 8개 학교 1,200여 명의 이름 모를 자랑스러운 고등학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대구 시민은 물론 전 국민께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헌신과 희생의 정신을 이어 받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어서 빨리 차가운 거리가 아닌 학교로 따뜻한 가족들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으면 하는 시민 모두의 간절한 마음을 모아 대신 전합니다. 이 나라에서 더 이상 가슴 아픈 일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과거를 잊어버리는 민족이 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2·28. 민주주의와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께서는 2·28. 민주운동기념회관에 가족들과 꼭 한번 방문해서 우리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대구 2·28. 그 역사의 현장에서 이지수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