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민주 대한, 영원한 2·28정신으로!
대구새론초등학교 6학년 송진우
7월이 되자 나날이 여름은 푸르름으로 깊어만 갔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초례산 뻐꾸기의 노랫소리에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나는 혼자 집 근처 신지호수로 산책을 위해 나섰는데, 허리에는 줄넘기를 감고 있어서 속으로는 운동선수처럼 보여지기를 은근하게 바라고 있었다. 산과 호수가 정답게 어울려서 시골 향기를 풍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대구광역시 안에 위치한 혁신도시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정부의 결정 때문에 수도 서울에 있던 공공기관 몇 개가 대구로 내려오게 되었고, 그래서 4학년이 되기 직전 나도 달구벌로 오게 된 것이다. 이제 아침 등교를 하면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자동차의 매연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올림픽대로가 한강을 휘감고 울려대는 경적을 지난 2년 반 동안 들을 일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 분의 결정 때문에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대한민국 전체가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정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법률에 근거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민주 대한민국의 시민이기에 최근에야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도 큰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곳곳이 서울처럼 사람과 자원이 넘치는 활력 있는 도시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5200만 모든 구성원들은 정의롭고 공정하며 공익을 위한 공동체의 큰 결정에 따라 주어야 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고 나는 또한 생각했다. 그래야만 이 나라는 강소국으로서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2년 전 대구에 처음 와서 2·28민주운동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관광대구의 관점에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중구의 박물관과 두류공원의 사적을 둘러 본 소감을 적었던 것이다. 오랜 수도인 ‘한양’의 관성에서 대구를 바라본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기억은, 2·28기념사업회의 홈페이지에서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 본 후 나를 새로운 감정에 빠져들게 했다. 6학년 사회교과서를 펼치면 첫 장이 4·19혁명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승만의 독재정치와 무능,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 3·15부정선거와 마산시위, 김주열의 죽음과 4·19의 전국 확산 그리고 이승만이 쫓겨나는 일들이 상세히 설명되지만, 2·28민주운동은 겨우 한 줄 등장할 뿐이다.
“3·15 부정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부정부패에 대항해 대구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음.”
나는 수업시간에 1960년 2·28 민주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전개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대우와 학생대표들의 회의를 통해 채택된 대구시내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의 공동 결의문을 낭독해 보았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반독재의 횃불이 이처럼 대구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대구의 학생투사들이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 모든 양심에 호소했다는 점은 특히 현재의 대구학생 모두에게 ‘빛나는 유산’임을 나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다. 박수는 터져 나왔고 순간 나는 2·28민주운동의 정신을 표현한 이 문장들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기로 결심했다. 과거에도 현재도 대구는 정의와 열정의 마그마가 항상 끓고 있는 역동적인 도시로 보여 진다. “심지어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혁신계 후보였던 조봉암이 이승만을 앞섰던 곳이다.”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신 적이 있다.
2·28민주운동의 에너지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달구벌 곳곳의 청년학생들의 마음속에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운명처럼 낯선 대구로 오게 되었고, 이 곳 달구벌에서 여러 스승님들의 지도로 큰 성장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분들 모두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우리 동네 안심대로를 달리는 518번 버스는
광주 금남로를 지나는 228번 버스를 닮았을 것이다.
민주주는 우리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피흘린 용기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고 전진하여 왔다. 2·28 영웅들의 용기는 5·18 영령들의 희생만큼 값지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죽기를 각오했다면 그것은 이미 죽음만큼
의 고귀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역사책을 많이 읽어 주셨는데, 나는 이제 ‘역사적’이라는 단어에 심장부터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나에게 언젠가 역사적 순간의 한 가운데에 섰다고 느껴지는
날이 찾아와 준다면 나는 피하지 않고 일자진으로 맞서 싸울 것이다. 그 때 1960년 2월28일 한 낮의 함성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대구야 만나서 반가웠다. 나는 어느 날 대구를 떠나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 대구와 대구의 모든 친구들, 대한민국을 위한 대구의 끝없는 열정과 정신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2년 만에 또 외쳐본다.
사랑해요 달구벌!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