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입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짙게 남아있는 2·28, 그날의 향기
다사중학교 3학년 조수연
광복 후 따스한 분홍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던 대한민국에, 2·28 민주운동이라는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 그 단추는 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존재하게 한 첫 단추였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도에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으며, 2018년에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 운동은 이승만 독재 정권에게 내미는 첫 번째 경고였다. 제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자유당에 소속되어 독재정권을 추구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상대 후보의 급서로 재당선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제5대 부통령 선거에는 자유당 후보 이기붕과 야당인 민주당의 후보 장면이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독재 정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이기붕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전 선거에서도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미리 넣어놓는 등 부정선거를 일삼으며 장기집권을 시도하였다. 심지어 2·28 민주화운동 직전에는 상대 후보가 대구 수성청변에서 계획한 선거 유세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려고 학생들에게 등교령을 내렸다. 이 결정에 대해 학생들은 국민을 독재 정치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반발했고, 2·28 민주운동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학생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선거에 출마한 양측 당의 유세를 참관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기 위해 등교령을 내린 것은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는 서양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바람직한 우리 민족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2월 27일 경북고등학교 학생부위원장 ‘이대우’의 결의문 발표를 시작으로 약 8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하였다. 안타깝게도 시위 현장에서 약 220명의 학생들이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국민들의 자유가 부당한 이유로 제한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을 바로잡고자 노력한 것은 ‘옳은 일’이다. 정당한 일을 하고도 체포되어 처벌받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고 억울했을지 감히 예상하기 어렵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일하다 죄 없는 국민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겉으로는 총과 수갑을 들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학생 편에 서서 시위 팻말을 들고 있지는 않았을까. 대구 학생들의 용감한 이 시위는 언론을 통해 마산, 대전, 부산, 서울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이루게 하였다. 뒤이어 일어난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도 2·28민주운동을 바탕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대구에서 일어난 2·28민주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시작인 대구에 대해 자부심이 생겼다.
현재 두류공원에는 2·28민주화운동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탑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애국심과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 많은 희생자분들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내용이 지워지지 않고 오래 보전되기 위하여 돌에 새겨진 것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잊히지 않고 항상 기억하며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홍빛 미래를 가진 대한민국, 우리 민족의식이 더 짙었기에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이 당시로 돌아가 2·2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만난다면 ‘피와 노력으로 완성된 사회에서 조금의 힘든 일로 불평해서 죄송하다고, 우리나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런 행복한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 완성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자유로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며 이분들의 노력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또한 더 살기 좋은,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