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뿌리를 내린 자유
대구상원초 6학년 최지아
5학년... 이제 1년이 지나 6학년이 되었다.
엄마가 매번 하던 말이 있다.
“너 이제 6학년이야. 5학년 때랑 달리 많이 어려워. 그러니까 열심히 해.” 그 말을 들으며
‘이제 6학년이구나’ 하고 설레고 기대하며 개학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산산조각 나 버렸다. 실망감을 마음속 깊이 묻어둔 채 강의를 켜고 사회책을 펼쳤다. 그때부터였을거다. 내가 사회에 엄청 관심을 가지고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많은 것을 알았다. 민주주의, 시위, 독재, 정권, 정치!
그리고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고 4.19혁명의 시작이자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주제인 2.28 민주화운동,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난 관심 없었다. 그냥 듣기만 들어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지금 글 쓰고 있는데도 후회와 부끄러움 그리고 죄송함이 다시 한번 몰려온다.
2.28 민주운동이란 1960년 2월 28일에 시작된 학생시위이다. 오후 1시경 대구 경북고 학생위원회 이대우가 결의문을 읽은 뒤 800여 명의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학원 내에 미치는 정치 세력 배제하자!''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물론 시위를 벌인 이유도 있었겠지?
1960년 3월 15일 실시될 예정이었던 제4대 대통령선거 및 제5대 부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이승만, 부대통령 후보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모든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강력한 야당 부통령이자 현직 부통령이었던 장면으로 인해 이기붕의 당선을 자신할 수 없게 된 자유당 정권, 2.28 민주운동은 이런 배경 속에서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대구의 고등학교들에게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되었다.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하며 대구는 불의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또한 이승만 독재에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던 대구지역 언론은 어린 고등학생들의 용기에 힘을 입어 '2.28 대구 학생의거'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학생시위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2.28의 함성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승리로 이승만은 물러났다.
지금 계속 생각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고마움'이다. 사람들이 방관만 하고 민주화 시위를 안 벌였으면 현재 대한민국은 독재 정치에 찌들어 자신들의 의견도 제대로 못 말하고 하라는 대로 하며 꼭두각시처럼 살아갔겠지, 정말 괴로울 것 같다.
만약, 1960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시위에 참가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할 것 같다. '고문 받으면 어떡해?', '잘못하고 죽으면?', '퇴학당하면?' 같은 생각으로 뒤덮여 구석에서 떨고 있었을 것 같다. 생각해봐도 과거 학생분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자, 이승만 독재 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인 2.28 민주운동.
2.28 민주운동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뿌리로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민주주의 실천운동이었다.
과거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싸워서, 일어나서 되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시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당연시 여기게 되었나를 되짚어 본다면 조금 더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된다.
이번 글쓰기는 현재 나의 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끝까지 하다 보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잘못된 일에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으면 내가 먼저 목소리를 내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것, 그리고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냥 침묵만 하던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과거 후손들을 위해 힘껏 소리쳤던 학생들의 뜻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