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2.28기념회관에서 얻은 용기
대구경동초등학교 4학년 신서윤
“이번 역은 명덕 명덕역입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어머니와 함께 2.28 민주운동기념회관을 찾아갔다.
내가 2.28 기념회관을 찾게 된 건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얼마 전 학교에서 4.19혁명에 대해 조사해오라는 과제가 나왔다
컴퓨터 검색창에 4.19혁명을 치자 연관검색어로 2.28민주화운동, 3.15부정 선거 등이 함께 나왔다
‘1960년 2월 28일? 그날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런 호기심이 나를 2.28 민주화 기념회관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입장을 하니 맨 처음 주먹 쥔 손을 번쩍든 두 학생 동상이 엄마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엄마, 사진 찍어주세요.”
나는 해맑게 웃으며 동상 사이에 서서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천천히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전시실을 둘러보며 방금 전 철없이 해맑게 웃던 나는 사라지고 이내 마음이 숙연해졌다.
1960년 2월 그날의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신문사세요~ 신문~!!”
‘이승만 대통령 12년 만에 대통령직 하야.’
전국의 고등학교와 거리 곳곳에서 기쁨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끝내는 순간이었다.
때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될 예정이었던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의 재당선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했다. 다른 후보자들의 선거 유세장에 모이는 것을 막으려는 강제 일요 등교를 비판하며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은 2월 28일 12시 55분 교사들의 반대에도 경북고 학생부 의원장 이대우 등이 학교 조회단에 올라 작성한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로써 2.28 민주운동이 시작되었다.
22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당했고 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2.28 운동은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큰 한 획을 그었다.
내가 만약 그 시절에 그곳에 있었다면 난 이렇게 거리로 뛰어나왔을까?
아마도 경찰에 연행되거나 부상당하는 게 무서워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의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까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들 앞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때에도 높은 음이 나오면 음이탈이 될까봐 소심하게 부르고 반장선거가 있을 때도 떨어질까 봐 부끄러워 나가지 않는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날의 그 작은 외침들을 시작으로 얼마나 큰일들이 일어났나 생각해보니 내 작은 도전들 용기들도 시간이 지나면 큰일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미래를 위해 맞서 싸워주신 선배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너무 감사하다.
그날 그분들의 설움 담긴 외침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나라엔 투표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그것도 학생들이 이런 용기 있는 일을 시작하다니’
나도 앞으로는 좀 더 용기 있게 무슨 일이든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념관을 나오며 다시 바라본 동상의 눈에서 나는 그들의 뜨거운 희열을 보았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