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1960년에서 이어진 2020년의 봄
대구 정화중학교 3학년 이수영
가만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와 나를 따스하게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봄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 그때의 봄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왠지 날카로운 바람, 거리의 분위기, 봄이 다가오는 2월 말에도 대구는 여전히 꽃피지 않은 겨울이었습니다. 1960년 2월 28일, 봄을 맞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은 학생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여전히 민주화의 봄을 맞지 못한 채 겨울 속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방송을 통해 2·28 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을 보고 2·2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2·28 민주화운동은 1960년 2월 28일, 3·15 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의 8개 고교 학생들이 자유당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일어난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야당 후보의 유세가 있는 날에 맞춰 정부에서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오게 했습니다. 대구 지역 학생들이 야당 후보의 유세장에 몰려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2월 28일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자유당의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일으키며 학교를 뛰쳐나갔습니다. 영상을 보는 동안 나는 어느새 1960년의 동성로에 나와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마냥 커 보였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을 중학생이 되고 보니 그들도 나와 불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1960년 2월, 거리에는 어느 어른보다도 희망이 넘치는, 열정이 불타는 학생들이 마음을 모아 외쳤습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60년이 흐른 지금도 이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작은 교실 안의 친구들도 모두 제각각 다릅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끄러운 친구도 있고 남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도 다른 1,200여 명의 그들이 한목소리로 외칠 수 있었을까요? 2·2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그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위해 두려움을 내던졌습니다. 용감하고 씩씩해 보였던 그들의 이야기도 사실은 여러 명의 떨리는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열정과 의지가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더운 것이 화면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핏대 세워 외치는 용기가, 그 열정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도 한번 그들의 이야기를 외쳐보았습니다. 까까머리를 하고 머리를 땋은 학생들과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꼭 연결되어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솔직히 저는 2·28 민주화 시위에 나가 곤봉을 들고 뚜벅뚜벅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도 어깨를 펼 수 있었을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그들이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서로의 팔을 잡고 단단한 벽을 만들어 독재를 막는, 그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웃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눈물 흘리지 않겠습니까? 2·28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후 벌써 60년이 지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촛불이고,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또다시 개인의 행복을 뒤로하고 사회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나는 2020년 대구에서 당당히 말합니다.

“1960년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2020년의 나에게, 우리에게 이어져 새봄을 만들 용기를 주었습니다. 내게 만약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소리 낼 일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1960년의 그 마음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