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나에게 의미 있는 숫자 2·28
영남중학교 1학년 류현서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함께 2·28 기념 공원을 걸어본 적이 있다. 3·1 운동, 4·19 혁명, 5·18 운동……. 날짜에 붙은 의미가 사실 나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숫자란 야구의 경기 점수라든지, 게임에서 내가 쌓는 점수뿐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중에 유튜브로 2·28 기념 운동에 대한 영상을 잠깐 볼 기회가 있었다. 지루한 수업 중에 우연히 보게 된 하나의 영상.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대구에 관련된 영상이길래 무엇일까 하고 끝까지 보게 되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은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려 민주당 후보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대구 지역의 경북고, 경북사대부고, 경북여고, 대구고 등 8개교 학생들은 2월 28일 교문을 박차고 나와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반기를 들었다. 이 운동은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결국 대구 학생들이 주도한 운동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운동이 계기가 되어 내가 6학년 때 사회시간에 배운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와! 생각할수록 놀랍다. 1960년 고등학교 2학년들……. 나도 70년 전쯤으로 돌아가 그때의 중고등학생이 된다면 나도 경북고등학교 형들처럼 빼앗긴 권리와 자유를 찾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서 자유를 위해 시위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나는 자신이 없다. 지금보다 더 자유가 없을 시기에 그 형들은 도대체 어떻게 용기가 나온 것일까? 자유를 위한 의지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솔직히 자유의 소중함을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학원에 다녀야 하니 집에서 마음껏 게임을 하지 못하는 자유, 부모님께서 휴대폰을 늘 감시하시니 그런 점이 많이 답답해서 자유가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시절처럼 내 의견을 마음껏 말하지 못하고 국가나 사회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을 때 내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형들이 없었더라면(지금은 70대의 할아버지가 되신) 지금 나는 이 대한민국에서 내가 원하는 꿈을 찾아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얼마 전 대구에서 시작된 신천지발 코로나를 경험하며 한때 대구에 살고 있는 것이 무척 부끄럽게 느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촌과 다른 친구들이 무척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본 2·28기념운동은 나로 하여금 대구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게 한다. 용기 있었던 우리 대구 학생 형들, 그리고 4학년 때 가보았던 청라언덕에는 우리 대구에서 시작된 항일독립운동의 모습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2·28의 의미를 알게 된 나는 우리 대구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요즘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스마트폰으로 부모님의 꾸중을 들을 때가 많다. 하지만 코로나로 답답한 현실을 겪으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지구가 깨끗해지는 시간도 되었고 어느 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천연동물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 소중한 일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본인들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랄 우리 세대를 위해 애써주신 대구 고등학생 형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나 역시도 앞으로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랄 우리 후배들을 위해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구의 멋진 중학생으로 커가고 싶다. 2·28이라는 숫자가 이제는 나에게 의미 없는 숫자가 아니다. 일상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는 지금, 이 숫자는 그 자유를 증명하는 숫자이다. 이 숫자가 이제는 야구 스코아보다, 나의 게임 레벨점수보다 더 의미있어질 것 같다.
2020년 5월 이제까지 태어나 살면서 코로나라는 전염병 위기를 겪으며 나도 부모님도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 혼돈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어떤 시대이든지 내 자리에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때 또 우리 후손들이 멋진 선배님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중학생으로, 집안의 아들로서 더 나아가 대구의 한 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