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2월 28일 대구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형, 누나들 감사해요!
대구명덕초등학교 5학년 김재윤
나에게 ‘2.28’은 어떤 의미일까? 2.28은 내가 다니는 학교 옆 2.28 기념 도서관에 책을 대여하기 위해 자주 다니던 곳이었다. 또 주말에 한 번씩 들려서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지구본 모양의 분수를 감상하는 곳 이었다. 우리 가족은 공원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늘은 2.28민주운동에 대해 조사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태껏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나무에 비교한다면 잎사귀 한 장에 불과했다.

첫 시작은 일요일에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나도 일요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데 등교 지시는 형, 누나들에게는 짜증이 났을 것이다. 이유는 3월에 칠 시험을 오늘 친다는 것, 토끼 사냥, 영화관람 같은 부당한 이유였다. 이 중심에는 3번이나 대통령직을 맡았으나 1번 더 대통령직과 독재를 꿈꾼 이승만이 있었다. 그때 당시 장면 박사의 연설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학생들을 일요일에 강제 등교 시킨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관심을 [시험, 토끼사냥, 영화관람] 버리고 12시 55분 경북고등학교에서 결의문을 읽었다. 내가 결의문 중에서 가장 뜻깊은 말은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이였다. 그리고 800명의 학생들이 중앙통(중앙로), 반월당, 경북도청으로 나아가면서 1,200명의 학생들이 되었고 학생들은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에 자유를 달라!”를 외치고 소리 질렀다. 이런 대구 2.28민주운동은 마산 3.15의거, 4.19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또 2.28민주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민주운동이 어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등학생 형, 누나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학생 신분으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쳤던 ‘유관순 열사’가 생각났다. 경찰들의 모진 폭력에도 꺾이지 않고 용기 있게 일어섰던 고등학교 형, 누나들은 작은 거인과도 같다. 이렇게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행복한 우리나라가, 독재 없는 우리나라가 될 수 있게 밑바탕이 되어 열심히 민주운동을 하며 독재에 맞선 이곳, 내 고향 대구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형, 누나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