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민주 의거의 그 날 2·28
서변중학교 2학년 김도유
횃불같이 일어나 민주 혼에 불 지폈네.
타오르는 젊은 함성 독재의 어둠 밀어내니
아 아 영원히 빛나리 민주 의거
민주 의거의 그 날 2·28 그날 2·28”

달구벌 정기를 받은 대구 시민들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이 노래는 2·28 찬가이다.

지난 제58주년 2·2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대구 시립 소년 소녀 합창단의 단원으로 참여했다.
이 기념식은 대구 학생 민주화 운동 기념행사로 대구의 학생들이 직접 사회도 보고 2·28 당시 선언문 낭독을 재현하는 뮤지컬과 연극에도 참여했다. 또 대구 소년 소녀들의 합창으로 무대가 채워지기도 했다.
대구 학생의 한 사람으로 1960년 2·28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해 내면서 정의를 향한 학생들의 외침에 가슴 뜨거움을 느꼈다.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하셨는데 대구 2·28 민주화 운동은 대구 학생들의 용기 있는 외침으로 정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준 학생들의 저항운동이었으며 민주주의라는 큰 물결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대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셨다.
이처럼 2·28 민주화 운동은 국가 기념일로 지정될 만큼 민주주의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1960년 2월 28일 그 역사의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시대에는 이승만 독재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태로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저질러진 불의와 부정에 분노하여 자유를 갈망하는 대구 지역의 경북고, 경북사대부고, 대구고등학교 등 8개 고등학교 학생 천 이백여 명이 교복을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자 학생들은 부당한 등교 조치에 반발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였다. 이 당시 고등학생들은 높은 정치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집권세력들은 이들의 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당시 집결지인 대구 반월당을 지나 매일 신문사, 경북 도청마당에서 학생들이 결의문을 낭독하다 경찰들과 강하게 충돌했고 대구 시민들은 경찰에 쫓기는 학생들을 숨겨주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결의문에는 학생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살리고 학원 내에 미치는 정치 권력을 배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사오입 개헌과 장기집권에 성공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바람은 정권교체였다.
2·28 민주화 운동을 도화선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고 3·15의거와 4·19 의거 등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이승만 하야로 이어졌다. 그리고 6월 항쟁,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2·28 민주화 운동은 학생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며 독재의 사슬을 끊은 민주주의의 승리를 보여준 것이다.

대구 시민이라면 한 번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대구시 한가운데 있는 “2·28 기념 중앙공원”에서 쉬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여유로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것은 2·28 운동을 위해 몸 바친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과 헌신을 담은 2·28 민주화 운동 정신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가며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지켜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