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은상(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상)
오늘, 우리에게 2·28과 대구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3학년 권혁준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다. 우리는 자랑스런 2·28운동을 계승한 대고인이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운동인 2·28운동을 주도한 학교의 학생으로서 우리는 긍지를 가지고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자랑스러웠다. 말이 쉬운 거지 그 옛날 ‘학생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지 마라’라고 외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 지 짐작이 간다. 부당한 일에 대응해 선생님에게조차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던 시절, 국가라는 큰 범주에 대항해 입을 열고 거리로 뛰쳐나간 그분들을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 생긴 내 꿈이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겠는가.
어릴 때부터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좋게 말하면 적극적인 아이, 나쁘게 말하면 설치는 아이. 학급회장, 학생회 회장 선거에 빠짐없이 출마했었고 믿어주었던 친구들 덕분에 항상 당선되었다. 작년에 학교에 꽤나 큰일이 있었다. 새로 부임하신 예술제 담당 선생님께서 매년 진행해오던 달구제 그러니까 예술제를 외부인의 출입 없이 진행하겠다 공언하신 것이다. 예술제에 별 관심 없는 몇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학생들은 분노했다. 남고에서 1년에 몇 안 되는 이성 친구를 만날 기회를 놓치다니, 그것을 넋 놓고 바로 보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순종적이지 못했다. 오라, 오라 해도 오지 않던 대의원 회의를 열어달라 선생님과 대화의 장을 열어달라 그들은 주장했고 왜 선생님께서 외부인 출입을 금하시는지 이해하던, 아니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학생의 소리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친히 그들의 뜻대로 행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허….“학생들이 정할 일이 아니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라!”, “난 귀찮고 다른 선생님 하신다 하면 진짜 나는 축제담당 바꾸면 좋겠다.” 오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니 선생님께서 소기의 목적 즉 ‘외부인 출입 시 발생하는 문제 예방’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귀찮아서 대충대충 넘어가시려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2·28주역학교의 표상인가? 대구고등학교 학생회 회칙 제1장 1조. 이 회는 특별 활동의 일환으로 학생의 취미 및 특기 신장과 자치 능력의 배양으로 민주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고, 건전한 학풍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이 민주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는 대구고등학교만의 방식인가?
나는 2·28운동의 주역이었던 대구고등학교의 학생으로서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다.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학교가 자랑스럽지 않고 자기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한 나서지 않는 학생들이 자랑스럽지 않다. 뜻 있는 친구가 대의원의 자리에 나아가는 게 아니라 생기부 한 줄 더 채우려고 또는 그 자리만 보고 나아가는 친구들이 학생회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뜻 있는 친구들보다는 인기 많은 친구가 당선되기 십상이고 그 폐단이 몇십 년을 걸쳐 내려왔다. 기어코 자기 몫의 밥그릇을 빼앗기고 나서야 우리는 그 죗값을 치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른다. 이미 각 학급의 대의원은 작년과 별반 차이 없이 구성되었고 예술제를 진행한 선생님을 욕하는 학생은 있어도 그때의 대의원을 뽑은 손가락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
2월 즈음 2·28 주역 선배와의 만남을 가졌었다. 나는 아직도 열의에 차 혁대를 풀고 신발을 끌러 신고 경찰을 따라갔다 말씀하시던 그 선배의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바꾸려 한다. 대의원이 바로 서는 학생회, 학생회가 바로 서는 학교를 통해 2·28의 정신을 계승하려 한다.
나는 학생회 회장 자리에 나아가 작은 감투를 쓰고 대의원의 의무를 강화할 것이다. 의무를 강화한다면 자연스레 학생들과 학교의 대의원에 대한 존중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내년에는 정말 뜻있는 학생들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막중해진 의무를 바탕으로 우리의 밥그릇을 다시 찾아오려 한다. 학생회에 대한 규칙 하나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학교 규칙을 바꿔나갈 것이다. 학생회의 독립 등의 조항을 하나하나 천천히 추가해 나간다면, 우리들의 의견을 명쾌히 주장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는 것에 대해 막힘이 없을 것이다.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이 학교를 내가 바꿀 수 있을까? 3학년이면 대입이 코앞인데, 학생회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만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까? 그러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때쯤 결심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후배들에게 작년과, 일요등교와 같은 지시가 주어진다면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거라고.
많이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지만 이 정도는 해야지 어디 가서 자랑하고 다닐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2·28 주역학교인 자랑스러운 대구고등학교 졸업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