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는 내가 좋아하는 펭수의 타종으로 시작되어 다른 새해보다 신나고 힘차게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그것이 우리의 생활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학교도 갈 수 없게 만든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는 공지는 생소한 그 괴물의 첫 등장만큼이나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멋진 학생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다짐이 긴장감 없이 반복된 온라인 학교생활로 조금씩 풀어져 가고 있을 때 즈음 어느 날, 우리 지역의 역사를 배우는 사회 수업으로 내 다짐의 끈을 다시 바짝 맬 수 있게 되었다.

사회 시간에 배운 대구의 <2.28민주운동>은 그렇게 느슨해져 가는 나 자신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운동에 참여했던 그 시대의 학생들에게 부끄러웠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 같다. 2.28기념 중앙공원에 수차례 부모님과 같이 갔으면서도 정작 그곳이 무엇을 기념하는 곳인지, 그리고 공원 이름이 왜 그런지조차 관심이 없었던 나 자신이 우습기까지 했다. 1960년은 내 부모님도 태어나기 훨씬 전으로, 60년 전 2월 28일의 이야기는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색한 이름의 정당, 자유당은 그 달콤하고 영원할 것 같은 정권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통령 선거의 상대 쪽 당 후보 연설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고등학생들이 갈 수 없도록 일요일에도 등교를 지시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3월에 있을 시험을 미리 친다는 학교, 토끼 사냥을 연 학교, 초청 강연회 참석과 졸업생 송별회 참석을 하게 한 학교 등 누가 보아도 억지스러운 행사로 등교 시키려 했다. 학교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분노하고 폭발한 경북고, 대구고, 사대부고, 경북여고 등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오후 1시를 전후로 반월당에서 도청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부패한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외침을 불씨로 민주화의 열망은 전국적으로 뻗어갔으며, 3.15마산 의거와 4.19혁명까지 역사적 큰 승리를 이루게 했다. 만약 1960년 2월 28일, 그날 대구 학생들의 외침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 지역의 역사를 알아보는 사회 수업을 마친 후, 나는 60년 전 그 일요일의 뜨거운 외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살아있는 민주주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직접 느껴 보자고 하면서 2.28민주운동 기념회관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벅찬 가슴을 안고 도착한 그곳은 코로나19로 인해 휴관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엄마와 나는 들어갈 수 없는 현관에서 손 안경을 만들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그곳에서 60년 전 그때 그 오빠, 언니들이 뛰어나올 것만 같은 묘한 기분에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은 다음을 약속하며 돌아 세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 차가 반월당을 지날 때, 나도 모르게 차 창문을 내리고 하늘을 올려 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맑은 하늘, 포근한 바람, 눈부신 햇살이 나의 눈을 저절로 감게 했다. 아득하게 저 멀리 도청 쪽으로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그들의 함성소리가 내 귀에 자꾸만 뱅글뱅글 맴돌았다. 60년 전, 그날의 기적을 가슴에 안고, 코로나 감염의 불안으로 물든 2020년을 슬기롭고 용기 있게 극복해 가는 이 시대 자랑스러운 대구의 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