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금상(대구광역시교육감상)
너에게 피가 있거든
경북공고업고등학교 2학년 김예린
한낮의 열기가 허벅지에 끈끈한 땀 자국을 남기는 유월에, 나는 동성로로 향했다. 참고서를 사러 간 것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너무 일찍 온 것인지 서점은 물론, 다른 가게들까지 문이 닫혀 있었다. 일단 살인적인 햇살을 피하고자 서점 바로 옆의 2·28 공원으로 걸어갔다. 도심의 한가운데 있어서 그런지 녹색 나무가 우거졌다 해도 그리 시원하지는 않았다. 다만 더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그 아래 아른아른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어 숨을 돌릴 정도는 되었다. 비둘기가 모여있는 분수대는 웅장하지 않아도 조그만 물줄기를 시원스레 뽑아내고 있어 눈 보기에 시원했다. 분수대 근처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개미만 바라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거려 휴대전화를 켰다.
그리고 오랜만에 들어간 SNS에서 한 홍콩 소년의 사진을 보았다. 경찰의 무릎에 허리가 눌려 바닥에 짓눌려진 소년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강렬한 이미지에 나는 더위도 잊고 '홍콩 현재 상황'이라는 이름 아래 올려진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뿌연 최루탄 가스로 뒤덮인 도시, 경찰들에게 무력으로 제압당하는 학생 시위대, 그런 학생들을 경찰로부터 지키기 위해 유서를 쓰고 뛰어나가는 대학교 양궁부 학생들, 찢어진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경찰에게 연행되는 여자. 사진작가와 전문모델이 찍은 듯 화보처럼 선명한 사진들이었다. 특히 제압당해 뒤틀린 몸으로, 카메라 앵글 건너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듯한 소년의 눈동자가 깊은 인상을 주었다. 홍콩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어린 학생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이곳도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인 장소였다. 1960년 3·15 대선을 앞두고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났다는 학생의거. 사실 교과서에 언급된 몇 줄이 2·28운동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내 나이 또래인데 그런 일을 했다고? 대단하네.’ 내 감상은 이 정도였다. 평소의 나는 나 자신을 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만 알았다.
사실 내가 이렇게 서점에 온 것도 삼촌에게 떠밀려 문제집을 사러 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책만 들고 있으면 공부를 하는 줄 아셨다. 그래서 과일도 깎아주고 용돈도 주신다. 나는 그 돈과 과일을 받아먹으며 누워서 음악을 듣고 소설만 읽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삼촌은 내게 화를 내셨다.
“예린아, 너 이제 열여덟이야. 언제까지 네 마음대로 살래? 너도 철이 들어야지.”
참 서러운 말씀이라 이렇게 기억에 남는다. 나는 마음이 가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삼촌의 눈에는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괜히 서러워진 것이다. 내가 울멍울멍 자리를 서성이고 있자, 자신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하신 우리 순수한 삼촌은, “오냐, 내가 네 맘을 모르겠냐.”고 하시며 책이라도 사서 공부하라며 돈을 쥐여주셨다. 그 돈을 받아서 무거운 몸으로 서점에 온 것이 오늘의 여정이었다. 할머니께 죄송한 감정은 발에 걸린 물건을 치우듯 마음 한구석에 슥슥 밀어두고,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덜 자란 풋내기 열여덟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1960년 2월 28일과 또 크게 다르지 않은 홍콩의 현재를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 말씀 어기는 것도 심장이 떨려서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그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시절에, 부모님도 아니고 대통령을 상대로 시위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신념을 담은 눈으로 불의에 싸우는 그 눈동자는 마치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웃기게도 내가 학생 시위대가 된 마냥 심장이 쿵쾅 뛰었다. 나는 괜한 고양감에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공원을 돌아다니며 걸었다. 발가락이 따끔하고 간지러워 몸을 움직이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저 앞의 위풍당당한 바위에 새겨진 문구가 보였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이러한 행위는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이 단단하고 강한 문구들이 아까 보았던 소년의 눈동자에 겹치는 것이다. 신념을 담은 눈으로 불의에 싸우는 그 눈동자는 마치 불타오르는 듯했다.
나는 참 오랜만에 수치를 느꼈다. 그리고 그 소년이 부러워졌다. 무엇이든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하여 이루고 싶은 신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지, 대단히 실감하게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싸워나간 그 소년은 앞으로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휴대전화를 끄고 시선을 떨구었다. 홍콩 소년의 사진을 얼마나 보고 있었는지 뻑뻑해진 눈을 비볐다. 정말 부러웠다. 소년에게 있고, 민주화를 위해 2월 28일에 모였던 대구의 학생들에게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 나는 내 마음을 다하여 이루고 싶은 내 인생의 신념이 있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신념이라는 것은 원한다고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떨리는 심장으로 바위에 새겨진 문구만을 입안으로 되뇌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더운 여름의 열기에 맞추어 “피가 있거든. 피가 있거든. 우리의 권리를 위하여…” 하며 다시 이리저리 흔들리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