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산문)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른다.
대구비봉초등학교 이현서
2.28 민주운동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느껴보기 위해 대구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2.28 민주운동 기념회관을 방문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1960년 학생운동을 준비하는 작은 모형 속의 언니오빠들과 함께 서 있었다. 작은 모형 속을 거닐며 나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관데 이런 위험을 무릅 썼을까? 과연 나는 저 무리 속에 함께 동참할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바로 민주 정치이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주인이 되는 권리, 즉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의사결정 방법은 어떠한 것인지, 주권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특히 국민이 가지는 국가에 대한 주권은 가장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2.28. 민주운동은 이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알리는 시초가 되는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독재자들은 주인이 되는 권리를 그들이 가지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힘이 없는 자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고자 했다. 가진 힘을 도구로 하여 학생들을 이용하였고 거짓을 앞장세워 대중의 눈을 가리고자 했다.

1960년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횡포와 부패가 절정에 다다르고 국민들의 빈곤과 불법적 인권유린이 극에 달할 무렵 다가오는 3월 15일 선거에 패배가 예견되자 이승만 자유당은 학생들이 유세장으로 몰려들 것을 막기 위해 일요등교를 지시하였다. 이를 간파한 학생들은 2월 28일 당국에 대항하는 위해 집회를 궐기하였으며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뛰쳐나가 중앙통을 거쳐 대구시청, 경북도청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을 규탄했다. 독재에 움츠렸던 언론도 대구학생운동을 보도함으로써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이렇듯 2.28. 대구학생운동은 고등학생이 주체가 되었으나 도망가는 학생들을 숨겨주었던 부모와 형제, 이웃의 어른들의 모습에서 그들 역시 학생들의 뜻과 다르지 않음을 보인 숨은 조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독재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국민의 결의, 우리의 권리는 우리의 힘으로 지키고픈 정의에 대한 갈망을 표출한 것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무엇이 언니오빠들을 결집하게 하였을까? 머리 속에 수많은 의문이 솟구쳐 오른다.

대다수가 몸을 사리고 있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용기 있게 보여준 행동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고등학생이 된다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일이 잘못됐단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진 않았을까? 그 당시 언니오빠들이 만약 그러했다면 지금의 나는, 현재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도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반장선거에서 투표로 뽑지 않을 것이고 친구들의 의견은 굳이 경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규칙이란 것도 따로 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매우 억울하고 무척 답답하고 꽤나 불만스러운 생활이 반복되었을 것 같다. 언니오빠들의 용감한 행적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도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옳음을 옳다고 말할 수 있고,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며, 정당한 방법으로 의견수렴을 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에 감사함을 느낀다. 또한 나의 목소리가 작을지라도 나와 같은 목소리가 함께 담아진다면 큰 목소리가 될 수 있음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긴 지금 우리의 힘, 내가 가진 국민으로서의 주권을, 그 가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값 비싼 결과물이었음을 깊이 새기게 된다.

1960년 2월 28일, 그때의 아픔, 고마움, 두려움 등 많은 감정들에 함께 빠져보았다. 시간이 흘러 흐릿해질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곳에, 그 시간에 머물러 보게 된다.

이젠 우리가 할 차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는 다짐한다. 정의로움을 가슴에 담고 그 때의 용기를 간직해야지.

내 마음 속 민주주의는 활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