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2·28민주운동 글짓기 공모 수상작-동상(산문)
세상을 바꾼 움직임
새본리중학교 2학년 김희진
띵-동.
‘이번 정류장은 2.28 기념 중앙공원 앞입니다.’

얼마 전, 518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가고 있는데 버스 노선표를 보니 ‘2.28 기념 중앙공원 앞’이라는 정류장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2.28 민주운동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그냥 넘어 간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2.28 민주 운동에 대해서 알고 나니 518 버스를 탈 때마다 2.28 민주 운동 당시의 모습을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2.28 민주 운동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한다. 정부는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했고 부정선거로 집권 연장을 기도했으며, 언론 및 야당을 탄압하고 부정투표로 국민의 뜻을 조작했다. 오늘날에는 부정투표라는 것이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1960년에는 정부가 투표를 조작한 것을 보니 당시의 정권이 매우 독재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선거의 조건이나 권리 등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배우는데, 예전에는 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것이 인상적이다. 국민들이 투표를 오늘날처럼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은 데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적인 면모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이후 자유당 정부는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에 어린 고교생들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는 대구 시내 공립학교에 일요 등교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학교를 뛰쳐나와 중앙통, 대구시청, 경북지사 관사 등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나를 비롯해서 친구들은 대부분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투표 자체를 성인부터 할 수 있어서 정치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학생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의 학생들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보고 민주 운동을 한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른들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입장을 어린 학생들이 해낸 것이다. 학생들은 연행과 처벌을 견뎌내며 자신들의 뜻을 알렸고 이에 대구 시민들도 나서서 학생들을 숨겨주고 나라에 불만을 표해 처벌을 완화하는 등 도움을 줬다. 같은 학생으로서 그들의 행동에 담긴 정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학생들의 움직임은 3.15 마산의거, 4.19 대학생 시위, 4.26 이승만 대통령 하야의 첫 불씨가 되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상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나도 학생이다 보니 2.28 민주 운동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직 어리니까’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며 넘어갔던 일들이 많은데, 이 사례를 통해 그동안 나의 생각은 핑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2.28 대구 학생 민주 운동은 가난 및 독재,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 시민 정신의 표출이며 해방과 더불어 ‘한국판 서양식 민주주의를 선구한 사건’이라며 평가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작은 힘으로 당시의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민주 운동을 통해 정의를 되찾은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그리고 늘 수동적이었던 나의 모습과는 비교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나의 의견을 널리 표출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또한, 학생 한 명 한 명의 작은 움직임이 여러 학생들의 큰 움직임이 되어 결국에는 연달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대통령 하야라는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 감동이었다. 이렇게 정부가 독재정권이었음에도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알려 민주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한 점이 정말 대단하고 의미가 있는 민주 운동이라고 생각된다.

한 사람의 의견이 모여 여러 사람의 의견이 되고, 여러 의견은 한 나라를 바꿀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언젠가, 내가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나의 작은 움직임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띵-동
‘이번 정류장은 2.28 민주 운동역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당신도 참여하시겠습니까?’